2017/07/26

사람들은 왜 음모론을 믿는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학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 주제가 ‘과학기술과 재난’라서 여러 재난 사례를 살펴본다. 지난 주에 선생님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음모론을 살펴보고 음모론이 사회과학 연구와 어떤 점에서 다르며 왜 음모론이 생기는지 생각해보고 비평문으로 쓰라고 하셨다. 나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와 논문 몇 편을 보고 비평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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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자들은 왜 과학을 사랑하는가?

- <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와 세월호 참사 -

음모론은 “어떤 특정 사건이나 일련의 상황을 강력한 음모자들이 꾸민 비밀 계획의 결과로 설명하는 이론”(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다. 많은 사람들은 음모론을 비-합리적 사고의 전형으로 본다. 믿고 싶은 것을 믿기 위해 근거 없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무턱대고 음모론을 믿는 사람과 음모론을 생산하는 사람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음모론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근거 있는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믿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지적 노력을 들인다. 특히나 현대 음모론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끊임없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음모론자들은, 음모론자인 주제에, 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김어준은 한국의 대표적인 음모론자이다. <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에서 김어준은 영화 <Intention>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김어준은 세월호는 고의로 침몰되었으며 이를 은폐하기 위해 세월호 선원들과 해경이 공모했다고 주장한다. 일부러 세월호를 침몰시키기 위해 병풍도 근처를 지날 때 닻을 내리고 전속력으로 운항했으며 해저 지형에 닻이 걸릴 때 세월호가 왼쪽으로 급변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어준은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 해군 레이더에 포착된 세월호 항적, 둘라에이스의 선장이 진술한 세월호 항적, 병풍도 해저 지형 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모두 선박 운항과 관련된 현대 과학기술의 결과물들이다. 결론 또한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짐작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를 3D로 재구성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얻은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누가 왜 세월호를 침몰시켰는가. 세월호가 침몰하면 누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기에 그러한 사고를 일으켰는가. 해경과 세월호 선원들은 왜 결탁했는가. 누가 해경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는가. 김어준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니라 정부라고 답한다. 과학적인 근거를 사용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한 것이니 그에 대한 답변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어준의 의혹 제기는 과학기술의 안정성과 조직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과학기술의 안정성은 과학기술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기기들은 원래의 목적에 맞게 정밀하게 작동하고 오류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조직의 안정성은 조직의 구성 원리에 따라 개인의 일탈에 그 운영이 크게 좌우되지 않고 상위 의사결정권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김어준은 묻는다. “AIS은 즉시 기록이 남아서 틀릴 수 없는데 선원들은 어떻게 정부가 자신들의 거짓 진술과 똑같이 발표할지 알았는가?” 법원은 AIS의 기술적인 한계나 오류 가능성을 감안하여 세월호 항적 기록에 조작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지만, 김어준은 AIS의 기술적인 한계나 오류 가능성을 배제한다. 선원들은 처음부터 틀린 항적을 말했고 정부는 선원들의 진술과 일치하는 항적도를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서 김어준은 세월호 선원들이 정부에서 발표할 항적도를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항적도를 조작한다면 수많은 관련자들이 모두 조작에 가담하거나 회유되어야 한다. 그런데 관련자들 중 한 명도 양심선언을 하거나 정보를 누설하지 않을 만큼 정부 조직이 치밀하고 안정적인가.

나는 음모론자들이 과학의 합리성을 믿지 않아서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합리성을 너무 믿어서 음모론을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당수에 심청이를 바치던 시절도 아니고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연안에서 선박이 가라앉아 수백 명이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중세 봉건제 시대의 국가도 아니고 행정망이 촘촘하게 깔린 현대 국가에서 선박 관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그러한 국가에서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제대로 된 조치도 하지 못하고 허둥거리다 수백 명이 죽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해운 사업을 하는 기업이 그런 이상한 선박을 왜 구입했으며, 감찰 당국은 그런 배의 운항을 왜 승인했으며, 해경은 희생자들을 왜 구하지 못했으며, 정부는 왜 정보를 숨기는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입장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술의 결함, 조직의 결함, 개인의 결함이 상호작용하여 벌어진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밀하고 거대한 음모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안정성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믿을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현대 음모론자들의 추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음모론자들이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게 해당 사안을 파악하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전문 지식을 저렇게 많이 아는데도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식을 너무 많이 알아서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정보를 모을수록 의문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사 때는 자기가 뭔가를 아는 줄 알고 석사 때는 자기가 아는 것이 없음을 알고 박사 때는 남들도 아는 것이 없음을 안다”는 대학원 개그가 전승된다. 이와 달리, 음모론자들은 지식 체계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음모론자들이 음모론을 믿는 것은 그러한 정보들을 일관된 논리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관된 논리를 만들기 위해 증거가 없지만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음모론자들이 온갖 전문 지식과 이론 틀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우연’이다. 과학사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역사에서 우연은 큰 힘을 발휘하는데 음모론자들의 분석에서는 우연이 배제된다. 나는 사회과학 이론의 분석과 음모론자들의 분석의 결정적 차이는 우연을 배제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사회과학의 모형에서는 주요 요소로만 구성된 모형을 만든 뒤 부차적인 요소를 추가하여 개별 사례를 분석한다. 우연적인 요소가 개별 사례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설명할 여지를 남긴다. 반면 음모론은 일반 모형 없이 개별 사례만 분석하는데도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일반적으로 우연적인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합리성과 먼 것으로 여겨진다. 합리성을 실제보다 과도하게 믿는 음모론자들로서는 우연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합리적 사고에 더 가까워 보일 것이다. 그래서 음모론은 합리성에 대한 과도한 추구 때문에 오히려 비-합리적인 추론이 발생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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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대체로 불완전함, 비합리성, 불안정성, 불확실성 같은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들이 이상한 규칙성을 발견하기를 즐겨하며, 사물이나 사건의 인과적인 계열을 끊임없이 물어보며 어른들을 괴롭힌다. 이는 원시 부족이나 고대인들의 사유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어쩌다 자연 재해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 현상을 좌우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고 자기들이 그러한 존재의 심기를 건드는 짓을 해서 그러한 존재가 재앙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이 어쩌다 보니 일어났다고 여기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며 고대인이 아니라 현대인이다.

합리성이나 논리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이 마치 교육을 잘 받은 현대인의 징표인양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음모론 관련 논문을 몇 편 읽으면서 어쩌면 그러한 것이 오히려 그들의 순진함이나 정신적 미성숙을 드러내는 지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깔끔하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으면 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겠나. 내가 대학원 다니면서 여러 연구자들을 만나기도 했고 다른 분야 연구자들에 대해 듣기도 했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자기 전공이 복잡한 줄은 알지만 세상일이 복잡한 줄은 모르는 것 같아 보인다.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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