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 자기 능력을 사회를 위해 쓰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지식인이 자기 전공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일에 아무 말이나 하면서 의사 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회 참여인 것처럼 칭송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식인에게도 해롭고 그 사람이 속한 조직에도 해롭고 사회에도 해로운 일이다.
지식인이라고 해도 자기 분야에서나 지식인이지 다른 분야에서는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와 다를 바 없는 경우도 많다. 사회 문제가 한두 가지도 아니고 또 그런 문제가 한두 분야에 걸친 것도 아닌데, 특정 분야의 전문가랍시고 온갖 문제에 다 참견하고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자기 의견을 표명하는 것과 달리 지식인이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은 꽤나 존중받는다.
자신의 전문 분야 관련하여 자문을 한다든지, 후원금을 낸다든지, 지지를 표명한다든지, 의혹 규명 등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권장할만하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 관료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고 말도 된다. 그들은 자기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벌이는, 빗나간 사회 참여다. 특히나 해로운 건 인문대 교수들의 사회 참여다. 훌륭한 인문대 선생님들은 어디선가 연구를 열심히 하든지, 교육을 열심히 하든지, 행정을 충실히 보든지, 셋 다 잘 하든지 하는데, 꼭 학부생들 앞에서 트랜스휴먼 같은 쌈싸먹는 소리나 하는 사람들이 대외 활동은 또 활발히 해서 인문학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여러 곳에 해를 끼친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부분 틀린 소리이거나 틀려먹은 소리다.
과학기술학 수업을 듣느라 재난 관련 자료를 찾다가 문학 전공자들이 재난에 대해 써놓은 글을 훑어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박사나 교수들이 쓴 것이었는데 죄다 한심한 내용뿐이었다. 문학에 등장하는 재난의 성격을 분석한 것이었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그들이 쓴 것은 재난 자체의 성격을 분석한 글이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분석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신문을 가끔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에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가 나쁘다”를 덧붙여놓은 정도의 글이었다. 학부생도 박사와 교수가 그러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이었다면 그 당시 하도 슬퍼서 그랬나보다 하겠는데, 그건 2012년 글이었다. 자본주의의 위기, 현대 문명의 위기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감수성이 독특하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래서 해당 사안에 대하여 그들에게 쥐뿔이나 무슨 전문성이 있는가?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것 말고 일반인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적어도 해당 글에서는 그러한 전문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물론 지식인의 사회 참여는 일종의 지표가 될 수 있다. 교수가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는 건 곧 하락장이 도래할 것임을 보여주는 징조이듯이, 교수들이 들고 일어섰다는 건 그 사회가 상당히 안 좋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교수들의 시국 선언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정권이 막장이며 곧 관 뚜껑 닫는다는 것이다. 딱 그 정도일 뿐이다. 그런 비상시국이 아닌 이상, 각자 자기 전문 분야의 일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사회 참여적 지식인에 대한 환상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지식인이 상아탑에 갇혀 있는 것이 당연하며 오히려 그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자기 분야도 아니고 막장 상황도 아닌데 어설프게 참여하려고 하는 지식인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려야 한다. “교수님, 지식인은 상아탑에 있어야죠. 상아탑 밖은 위험합니다. 이불 밖보다 훨씬 위험해요”라고 하면서 만류해야 한다.
* 링크(1): [중앙일보] “사과할 때까지 文 저주” 정의당 관계자, ‘강간당한 여성’ 비유 논란
( www.joongang.co.kr/article/21564668 )
* 링크(2): [전자신문] 이광수 위원장 ‘사과할 때까지 문재인 저주 15편’...“임기 5년 10000개 올릴 것”
( www.etnews.com/20170512000082 )
(2017.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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