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5

하마비와 가짜 뉴스



성균관대 정문 근처에는 ‘탕평비’와 ‘하마비’가 있다. 탕평비는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그 탕평비이고 하마비는 말에서 내리라는 비석이다.

일이 있어서 성균관대 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행 중에 하마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하마비가 뭐예요?”라는 말에 어떤 사람이 입을 하마처럼 크게 벌리고 하마 흉내를 내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옛날에 성균관에서 하마를 키웠다, 그래서 하마비다”라는 식으로 저마다 한 마디씩 하마비에 대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어떠한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 저런 식으로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거짓말은 그럴듯하게 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 때 조선에 코끼리가 들어오잖아. 알지?”, “네, 알아요.”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그 코끼리가 어디서 들어오느냐. 중국에서 들어온다고. 당시에 명나라 황제가 영락제잖아. 영락제가 정화를 원정 보냈고 그 원정이 6차까지 이어져서 아프리카까지 갔어. 거기서 코끼리를 잡아왔단 말이야. 아, 우리 명나라가 이렇게 잘 나간다, 신기한 것도 막 잡아온다, 이런 것을 제후국에 보여줘야 할 거 아냐. ‘이거 봐라, 너희 나라 이거 없지?’ 이러고 싶을 거 아니냐. 그래서 코끼리를 보내려고 하는데 영락제가 생각해보니까 한 마리만 보내면 섭섭하잖아. 그래서 코끼리를 보낸 김에 하마도 같이 보냈어.”

조선에 온 코끼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에 보낸 것을 일본이 조선에 바친 것이다.

“코끼리는 너무 크고 많이 먹고 위험해서 이걸 서울에서 못 키워. 관리도 밟아죽이고 하니까 지방으로 유배 보낸다고. 황제가 준 거니까 죽일 수 없잖아. 일단 살려는 주고 지방으로 보내는 거지. 지방에 보냈는데 거기서도 너무 많이 먹고 화난다고 사람 밟아죽이잖아. 그러니까 다른 지방에서도 키우게 해달라고 한다고.”

코끼리가 사람 죽이고 유배 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하마는 얌전하게 생겼거든. 그래서 성균관 대성전 앞에 늪을 만들고 하마를 기르게 한 거지.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다가 공부 안 되면 나와서 하마도 구경하고 쉬라는 건데, 그 자리가 지금 청룡상이 있는 자리야.”

하마는 온순하게 생겼지만 온순하지 않다. 악어보다 위험한 동물이 하마다.

“황제가 내려준 하마니까 그 은혜를 잊지 말자는 문구를 비석으로 새겼고 그게 정식 명칭이 뭐라뭐라 긴데 그걸 줄여서 ‘하마비’라고 부르는 것이지.”

나는 하마비가 하마를 하사받은 은혜를 기리기 위해 만든 비석이라고 거짓말하기 위해 조선에 코끼리가 살았다는 진실을 덧붙였다. 100% 거짓으로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이 아예 안 믿기 때문에 절반 정도는 진실을 섞어야 한다. 아마 가짜 뉴스도 이런 식으로 만들 것이다.

문제는 진실에 섞은 거짓 때문에 진실까지 믿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의 폐해는 가짜 정보에 속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진짜 정보도 믿지 않게 만든다는 점이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한 사람은 내가 코끼리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아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저렇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하나...’ 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코끼리가 조선 태종 때 왔다는 것까지도 거짓말인 줄 알았다.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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