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0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의 분탕질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이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를 불매한다고 하길래 왜 불매한다고 하는지 보니까 그 이유라는 것이 문재인 사진 각도가 이상하다, 영부인한테 왜 여사라고 안 하고 아무개 씨라고 하냐는 것이었다. 하도 사람들이 난리쳐서 나는 그 언론사들이 나는 왜곡보도나 오보라도 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는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상대방한테 존칭 안 붙이고 ‘당신’이라고 해서 싸움이 난다. 누가 영어로 번역해서 외국인한테 보여주면 재미있어 할 것이다. “You are fault.”, “What are you saying? You? Yooooou?” 한국인들은 이렇게도 싸운다. “How old are you?” “I’m forty five years old! How old are you?”

나도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이상한 기사나 칼럼이 실리는 것을 많이 봤다. 심지어 고종석, 강신주, 노정태도 <경향신문>에 칼럼을 쓴다. 그런데 칼럼이 이상하면 칼럼을 욕하고 칼럼 쓴 사람을 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신문 보기 싫으면 그냥 조용히 안 보면 될 일인데 떼로 몰려다니며 신문을 보겠네 안 보겠네 한다. 마치 본인들이 사회운동이라도 하는 줄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전형적인 갑질이다. 돈 몇 푼 내고 물건 사는 것이 퍽이나 큰 권리 행사라고 생각한다. 이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다. 그렇게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싫으면 <조선일보>를 보든지 종편을 보면 될 거 아닌가. 그렇게 <한겨레21>이 싫으면 타임지를 사서 보든지.

노무현 정권 초반에 진보 언론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보도하는 태도와 문재인 정권 초반에 진보 언론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보도하는 태도가 비슷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진보 언론들이 문재인 정권을 부당하게 공격하고 깎아내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사에서 문제 삼을 것은 호칭이 아니라 내용이다.

사과를 요구하는 데도 정도가 있다. 지나가다 부딪쳤다고 뺨을 때린다거나 무릎을 꿇으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 잘못해서 사과를 요구하더라도 적정 수준의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개별 기자의 사과를 요구하는 선에서 끝날 일을 가지고 언론사의 버릇을 고치겠네 어쩌네 하는 건 너무 남사스럽다. 불매 운동이라는 것은 이미 둘 사이에 볼 장 다 봤고 둘 중 하나 죽자고 할 때 쓰는 것이다. 아직 <한겨례>와 <경향신문>은 그 정도로 잘못하지 않았다. 미래에 그 정도로 잘못할 것이라는 심증만으로 부당한 사과를 요구할 수 없다.

이는 전략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상황 변화를 보면서 어떤 카드를 낼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첫 판에 최후의 카드를 낸 것이라서 이후 상황 수습을 매끄럽게 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그만큼 일부 문재인 지지자들이 전략 같은 것 하나 없이 정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표는 전략적으로 하자면서 언론에는 비-전략적이다. 투표는 최선을 뽑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최선이 아니니까 망하라고 한다. 정당은 비판적 지지하자면서 언론은 그딴 거 없고 그냥 죽으란다. 이러면 <한겨레>가 좋을까 <조선일보>가 좋을까. 이러면 민주당이 좋을까 자유한국당이 좋을까.

어떤 사람들은 대안 언론을 만들겠다고 한다. 아마도 못 만들 것이며 만든다고 해도 금방 망할 것이다. 어쩌다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서 신문사 비슷한 것을 차린다고 하자. 누구를 데려와서 기자를 시킬 것인가. <한겨레>나 <경향신문>에서 기자를 빼오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종편 망하면 김정은 안부 전하던 종편 기자들 빼와서 기자시킬 것인가.

그렇다고 자기들끼리 기자를 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글 쓰는 능력은 거의 안 는다. 학부 글쓰기 교양 수업에서 강사들이 열심히 쓰면 글이 는다고 하는데 그건 다 거짓말이다. 강사 워크샵 같은 데서 강사들만 있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전문가한테 배워도 글이 안 느는 판인데 자기들끼리 뭘 어쩔 것인가. 혹시라도 SNS를 이용하여 집단지성을 모은다고 한다면 가짜뉴스나 퍼 나르는 곳이 될 것이다.

문재인을 지키겠다고 하지 말고 자기 가정이나 지키고 자기 호주머니나 지키는 것이 좋을 거이다. 2003년의 민주당과 2017년의 민주당이 다르고 2003년의 한나라당과 2017년의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 다른데 누가 누구를 지키나. 화가 난다고 그대로 표출하는 건 어린애나 하는 짓이다. 어른이라면 화가 나더라도 적절한 수준으로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미성숙한 지지자들이 성숙한 지도자를 욕 먹이는 꼴이다.

그렇게 문재인을 지키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감정 분출하며 야릇한 정의감을 느끼지 말고 민주당에 진성 당원으로 입당하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자유한국당에 집단으로 입당해서 김용민을 당 대표로 추대하든지. 보던 신문 계속 보면서 궁시렁 궁시렁 욕을 할 수는 있겠다. “경향신문 이대근은 칼럼을 왜 그딴 식으로 써?” 이런 식으로. 그런데 불매 운동 같은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 링크: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 말투 바뀐 청와대… 역대 정부는 어떤 존칭 사용했나

( www.youtube.com/watch?v=IM1nHMsmdvA )

(2017.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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