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끝나고 대학원생들하고 선거 결과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대학원생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홍준표 말고 이회창이 나왔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최근 20년 간 민자당 계열 정당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사람은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후보들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이 보인다. 네 명 중에서 가장 나은 사람이 이회창이다. 이회창은 대법원장・감사원장・총리・여당총재를 거치며 대통령 빼고 안 해본 것이 없고, 개인적인 도덕성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위에 있다. 경력・능력・도덕성・품위 등에서 이회창은 이후의 다른 후보들을 압도한다. 이회창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이회창은 올해 82세(1935년생)다. 이회창이 지금보다 열 살 어리고 이번 대선 때 나왔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이회창이 열 살 어렸다면 이회창의 모든 경력이 다 뒤집히기 때문에, 열 살 어린 이회창과 내가 염두에 두는 이회창이 같은 존재인지 애매해진다. 이회창을 2007년에 냉동해서 2017년에 해동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회창을 왜 냉동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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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나라당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였다. 누가 후보가 되든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 한나라당의 정책 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 연구원들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고정 지지율이 40% 정도라서 별다른 전망을 보여주지 않아도 정부・여당의 발목이나 잡으며 국정 운영만 방해해도 손쉽게 정권을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정권을 잡은 다음의 일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국정 운영에 실패할 것이고 이는 한나라당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릴 것이었다.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무너진 조직을 수습하고 당을 재건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이회창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2007년에 이회창은 이미 72세였다는 점이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의 최대 약점은 고령이었는데, 그 당시 김대중 후보의 나이가 72세였다. 이회창은 다음 대선을 기약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이회창이 이미 대선에서 두 번 낙선했다는 점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 떨어지면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되어 국회의원은 할 수 있지만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고심 끝에 여의도연구소는 대통령 선거 출마 준비 중인 이회창을 납치하여 냉동 인간으로 만들어 여의도연구소 지하실에 모셔둔다. 이회창이 없는 대선에서 이명박은 65%에 가까운 득표율로 대통령이 된다.
5년이 지난 2012년, 한나라당은 당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꾼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오세훈이 <나꼼수>의 계략에 빠져 서울시장직을 건 정치적 모험을 하다 당을 위기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고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여의도연구소는 이회창을 해동할지 고민한다. 그 사이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 여의도연구소는 이회창 해동을 보류한다. 새누리당이 위기에서 벗어나서가 아니었다.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이기 때문이었다.
여의도연구소의 우려대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결국 당을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위기에 빠뜨렸다. 박근혜는 탄핵당하고 당이 쪼개지고 당내 대선 후보들 지지율을 다 합쳐도 10%가 안 되는 개막장이 되었다. 여의도연구소는 이회창을 해동한다. 2017년 이회창의 호적상 나이는 82세지만 10년 간 냉동을 했기 때문에 신체 나이는 72세다. 연구원들은 이회창에게 10년 간 있었던 일 속성으로 교육한다. 4대강 사업부터 최순실 게이트까지 모든 주요 사건들을 알게 된 이회창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렸으나, 곧바로 마음을 대쪽처럼 수습하고 정치적 행보에 나선다.
안철수를 띄우고 문재인을 욕하던 종편들은, 이회창이 다시 등장하자 매일 이회창을 칭송하기 바빴다. 안철수와 문재인을 민주당 계열 정당으로 한데 묶어 비난하고 이회창을 보수의 참된 지도자로 부각시켰다. 민주당 표를 분산하고 민자당 계열 표를 하나로 묶는 전략이었다.
종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회창은 보수 후보들을 한 사람씩 제압해나갔다. 유승민은 순순히 이회창을 따르기로 했다. 유승민을 정치권에 끌어들인 사람이 이회창이었기 때문이다. 유승민은 원래 자리인 이회창의 비서실장으로 돌아갔다. 유승민과 달리 홍준표는 이회창에게 저항했다. 홍준표가 막말을 하려는 찰나, 이회창은 이렇게 말했다. “어... 요즘은 고대 나온 사람도 대선 후보 합니까? 허허허허” 홍준표는 아무 말도 못했다.
보수층이 이회창에게 집결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재인과 안철수에게 분산되었다. 1997년 대선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종편과 방송 3사까지 이회창의 편이었다. 이회창과 박근혜의 선긋기도 분명해보였다. 여기까지 여의도연구소의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여의도연구소에서 한 가지 고려하지 않은 요소가 있었다. TV토론이었다. “문재인 후보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제가 안철수입니까 갑철수입니까?”, “네?”, “문재인 후보님,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네?” 안철수는 TV토론에서 자폭했고 민주당 지지자는 문재인에게 몰렸다. 그렇게 19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되었다.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문재인 41%, 이회창 40%, 안철수 12%, 심상정 6%, 기타 1%. 19대 대통령 당선자 문재인.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이회창은 여의도연구소 연구원들과 비밀요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이러려고 나를 납치해서 냉동했냐? 배때기에서 창자를 끄집어낼까보다.”
<끝>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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