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9

박사 과정 진학 전략

     

내가 있는 연구실에 석사 논문을 작성 중인 석사 수료생이 있다. 박사 과정 진학에 대한 의견을 물어서, 나는 지도교수가 받아주기만 하면 무조건 박사 과정에 들어오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석사 학위를 받는 사람은 웬만하면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될 텐데, 세 가지 경우 모두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1) 국내 박사 진학 후 학위 취득
(2) 해외 유학 후 박사 학위 취득
(3) 취업
  
(1)은 당연히 국내 박사 과정에 진학해야 한다. (2)도 일단은 국내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좋다. 석사 학위 받자마자 외국 대학에서 받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박사 과정에 한 발 걸쳐놓으면 혼자서 유학 준비할 때보다 유학 준비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인적・물적 자원을 이용하기에 유리하다. (3)도 일단 박사 과정에 들어오는 것이 좋다. 박사 과정을 휴학하고 구직 활동하는 것이 백수 상태에서 구직 활동하는 것보다 낫고,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는 경우에도 박사 과정 중이라고 하는 것이 석사라고 하는 것보다 좋게 보인다. 그러니까 세 경우 모두 일단은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좋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박사 과정에 들어오는 것이 가정에서 아버지로서 위신을 세울 때도 좋다는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자. 다행히 순하고 착한 아이를 낳을 수 있지만 의심 많고 집요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아이는 아버지가 석사 학위만 받고 박사 과정 안 간 것에 의혹을 제기할 것이다.
  
- 아이: “아빠는 왜 석사 학위만 받고 박사 과정을 안 갔어요?”
- 아빠: “지도 교수가 오지 말랬어.”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로서 위신이 떨어진다. 물론 핑계를 댈 수 있다. 하지만 의심 많고 집요한 아이한테는 잘 통하지 않는다.
  
- 아빠: “그때 너희 엄마랑 결혼해야 했는데 대학원생으로는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대학원 그만두고 취업했어.”
- 아이: “그래요? 그런데 지도 교수가 붙잡지는 않았어요?”
  
일단 박사 과정에 한 학기라도 등록했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면 아이에게 다른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 일단 아이의 질문부터 바뀐다.
  
- 아이: “아버지는 박사 과정을 왜 그만 두었어요?”
- 아빠: “너희 엄마를 만나고 결혼할 생각이라 석사 학위만 받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지도 교수가 붙잡아서 일단 박사 과정에 갔지.”
  
이미 지도교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므로 아이는 진실을 추적하기 어려울 것이다.
  
- 아빠: “그런데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왜냐하면...”
- 아이: “왜 그랬는데요?”
- 아빠: “과학철학보다 너희 엄마를 더 사랑했으니까.”
  
여기에 연기력이 뒷받침되면 아이가 ‘아, 우리 아빠가 평범한 개저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로맨티스트였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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