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1

EBS 드라마 <내 여친은 지식인>에 대한 감상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EBS 드라마 <내 여친은 지식인>을 연애와 인문학을 접목한 참신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도대체 뭐가 참신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학을 배경으로 한 EBS식 청소년 드라마에, 요즈음 하도 개나 소나 인문학 가지고 염병들을 하니까 인문학 냄새 풍긴 것 같은데 어떤 점에서 참신하다는 것인가.
  
드라마의 대강의 내용은, 공대생인 남자 주인공이 인문대생인 여자 주인공과 연애하며 인문학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아니랄까봐 주인공들은 일단 연애부터 한다. 인문대생인 여자 주인공은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항상 심각하고 재미없게 이야기하고, 남자 주인공은 상식이 없다는 이유로 여자 주인공한테 주눅 들어 있다.
  
여자 주인공이 아는 것은 자기 전공과 관련된 것이고 따지고 보면 그다지 전문적인 내용도 아니다. 전공 관련 내용이 상식 정도로 치부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그 학문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자 주인공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공대생 앞에서 그렇게 젠체하고,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 앞에서 “너는 맥스웰 방정식도 모르는 게 어디서 까부냐?”고 말 한 마디도 못 하고 무식하다고 무시나 받는다.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이 상식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지방대 다니다 간신히 편입한 공대생으로 설정했다. 인문학 같은 데 관심 없는 공대생 정도로만 설정했어도 충분한데, 남자 주인공이 무식하다는 설정을 하려고 굳이 지방대 출신 편입생으로 만들었다. 나는 편입한 적도 없는 데도 기분이 불쾌했다.
   
무식해서 애인에게 구박받던 남자 주인공은 유식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하철>(지금, 철학을 하자)이라는 인문학 스터디 모임에 가입한다. 20대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동아리 이름이 너무 구리다. 50대 아저씨들의 건배사 같다. 스터디 모임의 회원들도 역시나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재수 없는 말투로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불대기나 좋아하는 겉멋 들고 멍청한 인문대생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잘 표현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나도 모르게 ‘문송합니다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가 사장이어도 인문대생 안 뽑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철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내가 그런 생각이 할 정도였으니, 인문학과 먼 사람들이 그런 장면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철학과에 다른 과보다 미친 놈 비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은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정상인이거나 정상인처럼 산다. 그런데 언론에서 철학 전공자는 대부분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나온다. 누구 머리에서 이런 기획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웬만하면 그런 짓을 안 했으면 좋겠다. 유행을 타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기 전공에 남다른 애착이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이상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인문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부 때 배운 게 아무리 좋았어도 직장에서 이상한 문과생 티를 내지 말고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혼자 간직하고 제발 얌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링크: 
  
[EBS] 내 여친은 지식인 - 1화. 뭐가 진짜, 뭐가 가짜?
  
[EBS] 내 여친은 지식인 - 2화. 둘 사이의 거리
  
[EBS] 내 여친은 지식인 - 3화. 진정한 사랑이 자라나는 곳은?
  
  
(201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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