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방어회를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었다. 내가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처음 먹었다. 먹고 나서,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있다니, 그동안 어머니는 나한테 방어회를 왜 안 사줬을까,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어회를 먹으며 술을 마시고 나서 며칠 동안 술을 안 먹으니 아무래도 술을 먹어야할 것 같았다. 술을 먹어야겠는데 뭐 하고 먹어야 할까. 마침 숙소 근처에 횟집이 있었다. 방어회를 먹기로 했다. 마침 그날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
몇 주 전, 나는 어느 중고서점에서 <시공사 셰익스피어 선집 세트>를 사서 온라인 중고서점에 매물로 올려놓았다.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내가 읽을 생각이었다. 동료 대학원생이 내 상품을 보고 사고 싶어 했다. 동료는 매물로 올린 가격대로 사겠다고 책을 했지만, 아는 사람끼리 값대로 다 받는 것이 좀 그래서 나는 얼마 깎아서 팔았다. 그래도 밑지지 않고 몇 푼 남기기는 했다.
횟집에 가서 방어 반쪽에 채소와 초고추장 추가해서 1만 1천 원 주고 샀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맥주 맛은 잘 모르지만 회에는 독일 맥주보다는 일본 맥주를 마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350ml짜리 기린 맥주 다섯 캔을 1만원에 샀다.
숙소에 와서 혼자서 회에 맥주를 먹었다. 혼자 먹으면 무슨 맛이냐는 사람도 있는데, 좋은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다. 여럿이서 흥겹게 먹는 맛도 있지만 혼자서 멀거니 앉아 꼭꼭 씹어 먹는 맛도 있다.
가난했던 이덕무는 <한서> 한 질을 이불 삼고 <논어> 한 권을 병풍 삼아 겨울을 났다고 하니 반고와 공자 덕에 겨울을 난 셈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덕분에 회 한 접시를 먹었다.
(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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