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동창회에서 동창회보가 온다. 동창회비 내라고 동창회보가 온다.
동창회보 1면에는 “모교 건학 618주년”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다. 성균관대와 조선시대 성균관 사이에 연속성에 대해서는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역사가 장구하다고 자랑한다. 그런 글을 보면 내가 쓴 글도 아닌데 괜히 남사스럽다.
조선시대 성균관과 성균관대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하면 조선시대 웬만한 인물들은 죄다 성균관대 출신이 된다. 정도전, 이황, 이이, 정약용, 김정희, 홍대용, 유형원 등이 자랑스러운 학교 선배가 되고, 세종은 대학 이사장이 된다. 학생들 공부 열심히 하고 교수들 연구 열심히 하고 동문들 열심히 산다고만 해도 총동창회보에 쓸 내용은 충분할 것 같은데, 그렇게도 학교에 자랑할 것이 없는지 총동창회보에는 항상 유구한 역사가 장강처럼 흐른다. 그런데 이조차도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동창회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2000년대 모교는 인재창출 요람으로 부상했다. 정홍원・이완구・황교안 국무총리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역사 속 인물들의 맥을 잇고 있다.”
유구한 역사까지는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이건 아니다 싶다. 나는 지금까지 총동창회비를 안 냈는데 앞으로도 안 낼 거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도 절대로 총동창회비는 안 낼 거다.
내가 투덜투덜하니까 동료 대학원생이 이렇게 말했다. “〇〇씨, 그러지 마요. 저희 학교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서강대를 졸업했다.
(2016.12.06.)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