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7

반역자를 기른다는 건명원

     

나는 <건명원> 같은 시도를 좋게 본다. 성공한 기업가가 사회를 위해 자기 재산을 내놓은 것도 좋은 일이고 젊은이들에게 고전을 가르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허위과장 광고가 조금 있는 것 같다.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최진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최진석 교수: “건명원 건배사가 ‘반역자’다. 내가 ‘건명원’ 외치면, 원생들은 ‘반역자’ 한다. 반역자란 이미 있는 모든 것과 결별하는 거다. 과거의 나, 직업 형태, 내가 아는 지식, 사회 시스템, 지식습득 방식, 지식유통 방식 등 모든 것과 말이다.”
  
반역자를 어떻게 길러낼까? 고전 읽고 토론하는데 왜 반역자가 되지?
  
“학력, 소속 등 기재란도 없다. 수업료는 무료다. 대신 고강도의 공부량이 요구된다. 1기 정원 30명 중 최종 수료생은 11명에 불과하다.”
  
교수들이 고강도 공부량을 요구했고 최종 수료생 열한 명은 그것을 다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순순히 시키는 것을 다 하는 사람들이 반역을 할까, 아니면 중간에 뛰쳐나간 사람이 반역을 할까?
  
- 배철현 교수: “각자 자신의 길을 걸을 거다. 대기업에서 건명원 출신을 선호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원생들이 멀리 내다봤으면 좋겠다. 이곳은 이병철 회장을 만드는 학교지, 이병철 회장이 만든 회사를 보내는 학교가 아니다. 제2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를 양성하는 곳이 되고자 한다. 이곳이 원생들에게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생긴 지 1년밖에 안 되었고 수료생이 열한 명인데, 대기업에서 건명원 출신을 선호한다는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건 낳지도 않은 아이가 동네에서 천재 소리 듣는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고강도 공부량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고강도 노동량을 견딜 가능성도 높다. 충분히 기업에서 선호할만하다.
  
학생들 인터뷰한 것을 보면, 죄다 “나는 온실 속의 화초였는데 이제 반역자가 될 거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정말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았나 보다. 반역자가 될 놈이라면 “재미있었는데요, 책 몇 권 읽는다고 반역자가 되겠어요?”라고 말할 것 같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건명원은 파격 그 자체다. 교수진도, 수업 내용도, 시스템도 파격이다. ‘21세기 융복합 인재 양성소’로 표방한 이곳의 최강 무기는 스타 교수진이다. 전국 대학에서 강연 잘하기로 소문난 인문·예술·과학 분야 교수 8명을 그러모았다.”
  
반역자가 될 놈이라면 남들이 짜놓은 커리큘럼을 따르기보다는 자기가 커리큘럼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실제 이공계 학부 출신 중에 대학원을 문과로 온 사람이 적지 않다. 드물지만 인문계 학부 출신인데 이공계 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 반역자는 알아서 큰다. 커리큘럼 짜인 곳에 와서 “선생님, 선생님, 저 좀 키워주세요, 반역자로 키워주세요”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 최진석 교수: “얼마 전 원생들이 ‘건명원을 내 고향으로 만들겠다’ ‘내 꿈의 뿌리로 만들겠다’고들 하더라. 앞에서는 그냥 웃었지만 집에 오면서 굉장히 뿌듯했다.”
  
반역자는 고향도 없고 뿌리도 없다.
  
- 배철현 교수: “‘나 건명원 나왔어’ ‘건명원 ◯기야’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곳.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건명원 문을 연 첫날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입학식 첫날 ‘지금 이 순간이 거룩하다’는 말을 했다.”
  
반역자가 기수 따져가면서 반역하는가? 내가 알기로, 기수 따지면서 반역한 집단은 하나회밖에 없다.
  
“2기 건명원은 더 개방적이다. 1월 22일부터 2월 4일까지 모집하는 2기생의 자격요건은 ‘만 19~35세의 사람’이면 된다.”
  
내가 지금 만 30세니까 앞으로 응시할 기회가 5년 정도 남았다. 기회가 된다면 건명원 해보고 싶다. 멋모르고 온 학부생들 옆구리 찔러가면서 “야, 반역자 된다면서? 무슨 역적질을 커리큘럼대로 해?” 이러고 놀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반역자를 기른다는 건명원에서 나처럼 천성이 유순한 사람을 받아줄지는 의문이다.
  
  
* 링크(1): [주간조선] 한국의 스티브 잡스 양성소 건명원 1년… 30명 중 생존자 11명
  
* 링크(2): [주간조선] 라틴어・도덕경・질문과 토론… 공부로 한계를 넘었다
  
  
(2016.02.28.)
     

댓글 1개:

  1.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건명원. 포장이 잘된곳인데 비판적으로 볼 필요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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