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과외 학생한테 문체반정을 설명했다. 수학 과외니까 과외 내용과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하잖아. 돈 안 되는데 이상한 글이나 쓴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데 옛날 사람들도 비슷한 짓을 해. 옛날 사람들이라고 별 거 없어. 옛날은 지금처럼 책 써서 돈 번다는 개념이 별로 없어. 그냥 글을 쓰는 거야. 재미있잖아.
그러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SNS를 하느냐? 그 때는 페이스북이 없잖아. 종이에 써. 종이에 써서 돌려. 온라인이 없으니까 오프라인으로 돌리는 거지. 그러다 쓴 글이 많아지면 책으로 묶어서 내는 거야.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라는 책을 썼단 말이야. 왜 썼느냐? 박지원의 친척 형이 북경에 간대. 황제가 칠순잔치 한다고 인사하러 간대. 박지원이 보니까 따라가면 재미있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따라가는 거야. ‘형, 형, 저도 갈래요’ 하고 따라가는 거야.
(연습장에 한국과 중국 지도를 대강 그린 뒤) 북경이 청나라 수도잖아. 황제가 여기 있을 거 아냐. 그러면 황제한테 인사하고 오면 되니까 북경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면 되지? 그런데 북경에 가니까 황제가 없대. 왜? 여름이니까 덥대. 더우니까 북쪽으로 갔대. ‘열하’라는 곳이 중국하고 몽골 접경 지역이라는데 여기까지 가. 이게 무슨 군사적인 목적도 있고 그렇다는데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어쨌든 황제가 거기 있으니까 사신도 거기 가는 거야.
여행 가서 신기한 거 보면 어떻게 해? 지금은 SNS에 올릴 거 아냐? 그때는 그게 없으니까 글로 써. 바로 올릴 수 없으니까 글로 다 쓴 다음에 집에 와서 돌려. 그러니까 업데이트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그때는 사진도 없잖아. 지금이면 사진 찍을 것도 그 때는 글로 써. ‘나 이런 거 봤다’ 하고 써.
예전 중학교 교과서인가 <일야구도하기>가 나와. 박지원이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넜다는 이야기야. 이게 뭐야? <하룻밤에 강 아홉 번 건넌 썰>이야. 이게 한자로 하니까 <일야구도하기>가 되는 거지. ‘일야 구도 하기’ 그러면 안 돼. 구도하는 게 아니야. ‘일야 구 도하기’라고 읽어야 돼. 『열하일기』에는 박지원이 낙타 못 본 이야기도 나와. 본 게 아니라 못 본 거야. 박지원이 하도 이야기를 잘 쓰니까 어떤 것을 본 것만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못 본 것도 이야기로 만들어. 자다가 낙타가 지나가는 걸 못 봤대. 하인들한테 ‘아오, 낙타 볼 수 있었는데 못 봤네! 이 새끼들아, 왜 나 안 깨웠어?’ 이러는 거야. 이게 제목이 뭐였더라... 이건 그냥 <낙타 못 본 썰> 이런 거야.
어쨌든 그렇게 글을 써서 돌렸더니 사람들이 좋아해. 사람들이 그 글을 보고 좋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 글을 본 사람들이 그걸 베껴 써서 자기 주변 사람들한테 돌려. 그 때는 그게 ‘좋아요’야. 오프라인으로 ‘좋아요’ 하는 거지.. ‘이덕무 님이 좋아하셨습니다’, ‘박제가 님이 좋아하셨습니다’, ‘홍대용 님이 좋아하셨습니다’, 이러는 거야. 그렇게 다른 ‘좋아요’ 하니까 친구의 친구가 보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그 글을 본다고. 이렇게 친구의 친구가 글을 보다가 누구까지 보냐면 그 당시 왕까지 보게 된 거야. 그 왕이 정조야.
정조는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왕이거든. 중세 유럽의 샤를마뉴 같은 경우는 글자를 쓸 줄 모른단 말이야. 그런데 정조는 자기가 신하들 스승이래. 자기 입으로 한 말이야. 얼마나 공부 많이 하고 똑똑했으면 그랬겠어? 그런데 왕이 보니까 그런 글이 마음에 안 들어. 글을 똑바로 쓰래. ‘나 중국 갔다 왔다능. 신기한 거 많이 봤다능.’ 이런 거 싫대. 그런 식으로 쓰지 말래. 그게 ‘문체반정’이야.”
내가 조금 잘못 설명한 게 있어도 앞으로 더 자라면서 알아서 책도 읽고 올바른 교육도 받고 하면서 혼이 정상적으로 바로 잡힐 것이다. 내가 주체사상을 가르친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20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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