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0

내가 진보이든 보수이든



며칠 전에 대학원 신입생을 만났다. 예년 같으면 학기 시작하자마자 신입생을 만났을 텐데 코로나19 때문에 연구실에 자주 나가지 않아 4월이 되어서야 처음 대면한 것이다.

저녁 먹고 와서 대학원생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동료 대학원생들이 신입생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얼핏 보면 보수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보면 보수적이다”, “그런데 맞는 이야기다”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웃으면서 내가 정의당원이고 당비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진보냐 보수냐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성애자냐 동성애자냐, 교수냐 강사냐, 자산가냐 무산자냐, 배우자가 매력적이냐 아니냐 등은 그 사람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런데 진보냐 보수냐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진보냐 보수냐가 그 사람에게 실제로 중요한 요소이려면 그와 관련된 어떠한 활동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제약을 받아야 할 것인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치 성향이나 투표 성향이란, 심심할 때 주위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주제를 결정하거나, 괜히 짜증날 때 이유 없이 다른 사람과 싸울 명분을 만들어주거나, ‘나도 세상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나름대로의 자존심을 유지하게 하는 요소에 불과하다.

남들이 묻지도 않는데 굳이 자기가 진보라거나 보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단지 자아정체성을 찾고 싶어 하는 연약한 개인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직업이나 재산이나 환경이나 타고난 재능이나 주택소유 여부 같은 요소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나 이념 같은, 일종의 고상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추구하는 자신을 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입장을 집단의 입장에 대충 끼워맞추는 것이다. 애초에 개별 사안에 대한 견해를 가질 능력이나 조건이 안 되니, 자기가 속하고 싶은 집단의 입장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책 한 권 읽고 자신을 ‘〇〇주의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뭔가 고상한 것이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뭔가 극적인 일화와 함께 물증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한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었냐고 물으면, 대체로 하룻밤에 읽는 뭐시기 시리즈 정도 수준의 책이다. 하룻밤에 〇〇주의자가 될 정도면 그 전날 밤에도 별 생각이 없었고 그 다음 날에도 별 생각이 없으며 그냥 그 날 밤에 책을 읽으며 자의식이 많이 고양된 것이다. 보통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고, 그 자유주의라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으니까 방해하거나 참견하지 말라는, 사춘기 식 자유주의나 윤서인 식 자유주의다.

나는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굳이 근본 없는 티를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라고 해서 그렇게 훌륭한 근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근본 없는 티를 안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누구나 가능하다. 근본 있는 티를 내려면 뭔가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근본 없는 티를 안 내려면 그냥 근본 없는 짓만 안 하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근본 없는 티를 덜 낼 것인가? 사안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 내가 어떤 사안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에 대한 견해는 무엇이며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 간단하게 밝힐 수 있는 정도만 된다. 그렇게 말하면 단지 자의식 과잉 때문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어떠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인이 나름대로 견해를 가질 정도로 알 수 있는 분야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면 결국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는 입장을 보류하게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 입장을 보류하면 된다. 적군과 백군이 내전을 벌이는 시기도 아닌데, 굳이 별별 사안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나와 비슷한 수준의 비-전문가들과 이유 없이 싸울 필요는 없다. 사안에 따라 판단하면 쓸데없는 다툼도 줄어든다.

이렇게 본다면, 어떤 사안에 접근하는 나의 태도는 보수적인 태도로 보일 수도 있겠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견해와 태도는 구분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안에 대한 견해 자체는 진보적일 수 있는데 해당 사안에 접근하는 태도는 보수적일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예산이 어느 정도 확보될 수 있는지 등 현실적인 요소를 따지는 것은 보수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고, 별다른 근거 없이 그냥 이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아무 주장이나 하는 것은 진보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진보적인 태도로 보이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이고 추구할 만한 것인가? 개별 사안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지식 없이 마냥 힙스터인 것이 그렇게 자랑할 일인가?

주체하기 힘든 거대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항상 마음이 답답하고, 규율과 속박이 싫고, 질서정연한 것도 싫고, 하여간 다 싫고, 세상과 불화하며 고통받으며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그런 외유내강인 내가 사랑스러워 죽겠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된다. 누가 사상을 이유로 탄압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오랫동안 어떠한 신념을, 사실 별 것도 아닌 믿음인데도, 그걸 일정기간 동안 지켜왔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그렇게 살면 된다. 자기를 사랑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자아 같은 데는 관심이 없다. 실효성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런 입장에서 진보정당이라든지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교육정책 같은 것을 보니 그게 정책일 수 없는 것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면서 남보고는 사교육 하지 말라고 하고 자기 자식만 사교육을 해서 걱정이 없다든지,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좋은 시절에 교수가 된 사람들이 대학을 직렬로 연결하자, 병렬로 연결하자 아무 말이나 하는데, 그걸 보고 욕을 안 할 수가 있는가?

* 뱀발

자의식이 취약하거나 과잉인 사람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바람에 그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과 진보적인 사람들의 성향을 연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 이는 잘못된 연결이다. 그러한 것들은 한 개인의 취약한 정서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실제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조직이든 뭐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활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 데서 필요한 것은 아마도 거대한 자아가 아니라 인내나 절제 같은 것일 것이다.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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