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1

대학원 수업에 유튜브를 활용할 방법에 대한 구상



대학원 수업은 1군 과목과 2군 과목으로 나뉜다. 여기서 ‘1군’, ‘2군’이라는 것은 수업이 다루는 주제의 범위를 가리킨다. 1군 과목은 대체로 통론 격의 수업을 가리키고, 2군 과목은 더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는 수업이다. 예를 들어, 1군 과목인 <과학철학통론1>과 <과학철학통론2>에서는 과학적 설명, 과학적 방법, 이론, 법칙, 환원, 실재론 등 해당 분야의 여러 주제를 한 학기에 다룬다면 2군 과목에서는 환원만 한 학기 동안 다루는 식이다.

내가 아직 대학원생이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연구에 뜻이 있는 강사나 교수들은 다들 대학원 2군 수업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대체로 뜻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강사들한테 대학원 수업을 잘 안 줘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교수도 하고 싶은 수업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가령, 해당 학과의 학생 수가 적으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 어렵기 때문에 2군 수업이 아니라 1군 수업도 개설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1군 수업은 건너뛰고 2군 수업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 잘 하는 사람은 1군 수업 안 듣고도 2군 수업에서 잘 하니까 괜찮겠지만 그건 애초부터 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은 1군 수업을 들어도 2군 수업에서 잘 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1군 수업을 건너 뛰고 2군 수업만 만들면 더 곤란해진다. 그러면 그에 맞게 2군 수업에서 다루는 범위를 줄여야 한다.

학생들에게 2군 수업을 듣기 전에 1군 수업을 듣게 하면 좋겠지만, 학생들보고 1군 수업이 개설되는 학교에 가서 미리 듣고 오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1군 수업이 제대로 개설되지 않는 학교에서 2군 수업을 잘 운영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생각한 것은, 1군 수업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공개해서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학적 설명을 주제로 2군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에게 <통론1>의 과학적 설명 부분을 미리 보게 하고 환원을 주제로 2군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에게 <통론2>의 환원 부분을 미리 보게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통론1>, <통론2>의 강의자료를 만들고 강의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든다. 혼자서 다 만들려고 하면, 강사는 교수가 되지 못할 것이고 교수는 실적을 채우지 못해서 쫓겨날 것이다. 그래서 이게 가능하려면 여러 사람이 협업해야 한다. 통론의 주제가 일곱 개니까 과학철학 강사나 교수 일곱 명이 한 분야씩 맡으면 1년 이내에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각자 매번 통론을 강의할 때마다 한 주제씩 추가로 촬영하고 올리면, 20년 쯤 지난 후에는 일곱 가지 버전의 통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이 부족한 학교에서 강의하는 사람도 더 나은 교육이나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을 응용하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학교에서도 수업 개설에 대한 제약이 있다. 학과에는 개설할 수 있는 교과목의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교수가 아무리 학구열과 교육열이 넘쳐난다고 해도 원하는 수업을 다 만들 수 없다. 생물학의 철학의 주제가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1군 과목인 <생물학의 철학>은 하나뿐이라서 수업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몇 개로 한정된다. <물리학의 철학> 같은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강의를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이를 활용한다면, 과목을 개설할 때마다 커리큘럼 구성을 다르게 하면서도 학생들이 해당 학기에 다루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도 접근하기 쉬워질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교수가 1군 수업인 <생물학의 철학>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여덟 가지 정도 되는데 실제로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는 네 가지라고 하자. 수업을 개설할 때마다 한 주제씩 유튜브에 올리고 그 다음 번에 수업을 개설할 때는 유튜브를 찍어올린 주제는 건너뛰고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이다. 가령, 지난 번에는 정보 이론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렸으면 다음 번에는 정보 이론을 다루지 않거나 매우 간단히 다루고 자연종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수업을 한 번 개설할 때마다 한 가지 주제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면, 수업을 네 번만 개설하면 한 학기 분량의 동영상 강의가 된다. 이렇게 되면 생물학의 철학과 관련된 별도의 통론 수업을 개설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생물학의 철학> 수업을 <통론1>, <통론2>처럼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물학의 철학> 같은 수업이 아예 안 열리는 학교의 학생들도 생물학의 철학에 대한 접근이 쉬워질 것이다.

* 뱀발(1)

교수가 개인적으로 하지 말고 대학에서 교수들이 하는 수업을 다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꼭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한 학기 수업 단위로 찍어서 학교가 올리면 개별 교수자가 수정하기 어려워진다. 연구자들의 성격상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할 것이고 만족스러운 완성도가 안 나올 때까지는 강의를 안 올리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한 학기 강좌를 통째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개인 계정으로 유튜브에 올려야 수정이나 편집이 쉬워지고 원하는 부분을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강의 동영상을 올릴 유인이 더 커질 것이다.

* 뱀발(2)

이과대의 어떤 선생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그 선생님에게 학부 전공수업을 동영상 강의로 찍어서 공개하자고 제안해서 잠도 못 자면서 수업 준비하고 수업 때도 최선을 다해서 강의하고 하여간 고생고생해서 선생님이 보기에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학기 말에 담당 직원에게서 실수로 동영상을 다 날렸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야기를 하시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하시는데,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 때를 회상하는 그 선생님의 얼굴은 뻘겋게 되면서 이마에 핏줄이 볼록 솟는 것이 보였다.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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