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1

강의 평가에 모든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는가?



강의 평가 때문에 강사들이 눈치를 보기는 보는 모양이다. 내 주변에도 대학 강사들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강의 평가 때문에 고통받는다. 왜 고통받는가? 대충 강의하고 쉽게 돈 벌려고 했는데 학생들의 교육열이 높아서? 아니다. 학생들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써넣어도 전부 다 강의 평가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평가가 강의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말은 기본적으로는 맞다. 그런데 모든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강의 평가는 강의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라고 있는 것인데 개소리가 반영되면 강의는 더 나빠진다. 어떻게 해야 개소리를 강의 평가에서 걸러낼 수 있는가? 간단하다. 일정 학점 미만을 받은 학생들의 평가를 강의 평가에 반영하지 않거나, 가중치를 매겨서 덜 반영하거나, 그들이 매기는 점수를 강의 평가에 반영하지 않고 서술형 의견만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서술형 의견 옆에는 그 학생이 받은 학점이 병기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은 다들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견들의 가치가 동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A+ 받은 학생의 의견과 C+ 받은 학생의 평가가 동등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두 학생의 평가가 동등한 취급을 받는 것이 더 이상하다. 물론, C+ 학생이 수업에 관한 좋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그러한 의견은 서술형 의견으로 반영하면 되지, 굳이 정량 평가에서 그 학생의 평가를 반영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의견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의견이 모두 동등하게 취급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 큰 어른 중에도 그런 의견들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물리학을 쥐뿔도 모르는 내가 <한국물리학회> 같은 데서 하는 학술대회에 가서 나도 의견이 있다면서 “물리학자들아, 왜 내 의견 무시하냐?”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

내가 20대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안 좋은 의견을 밝힌다고 하자. 그러면 그들이 나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저 아저씨도 나름대로 의견을 가졌으니, 아저씨의 의견과 우리의 의견을 동등하게 취급하자고 생각할까? “아저씨가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해요?”라고 항의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뭘 안다고”이다. 뭘 아는 사람의 의견은 뭘 모르는 사람의 의견보다 존중받아야 한다.

A+ 받은 학생은 C+ 받은 학생보다 그 수업에 대해서는 뭘 아는 학생이다. 그러니 C+ 받은 학생의 평가에 낮은 가중치를 부여해서 A+ 받은 학생의 의견 표명에 노이즈가 안 끼게 하는 것이 수업에 그나마 악영향을 덜 미칠 것이다.

* 뱀발: 내가 위와 같은 의견을 밝히면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자유한국당 지지자라는 오해를 받는 거예요.” 어쩌면, 사람들이 보수/진보를 판단할 때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이나 지지 정당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태도를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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