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영어 발음에 집착한다고들 말한다. 왜 그런가? 외국 방송사에 입사할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영어 발음에 집착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변들은 대부분 문화적인 측면과 관련된 것이다. 영미권에 대한 사대주의 때문이라든가, 백인에 대한 동경이라든가 등등. 문화적 분석이라고 불리는 것들 중 상당수가 허튼소리이듯, 영어 발음 집착에 대한 문화적 분석(?)도 대부분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내가 들은 설명 중 설득력 있는 것은 “한국인이 영어를 못해서 발음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떤 영어강사가 한 말인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정확히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 강사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한국 사람 중 상당수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영어를 구사할 줄 모르니 다른 사람이 영어로 말해도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지 못한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이 어법에 맞게 말을 하는 것인지, 어휘를 비롯한 여러 가지 표현이 중학교 수준인지 대학생 수준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딱 하나 남는다. 영상 매체에 나오는 미국 사람이 말하는 것과 얼마나 억양이나 발음이 비슷한가, 어려운 발음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발음하는가만 남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의하면, 한국에서 영국식 영어 발음보다 미국식 영어 발음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영어 강사의 설명은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들의 대화에도 적용가능하다. 자기가 아는 분야에 대해 누군가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이나 구성에 집중하는데,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화자의 표현이나 몸짓, 발음이나 발성 등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수도권 중심으로 발전한 한국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며,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경외심을 가져서 그런 것도 아니며, 아나운서나 성우 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내용을 못 알아먹을 때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이러한 설명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우리 일상의 일도 우리에게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알기 위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한다고 해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내 행동의 원인이나 이유가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엉뚱한 것을 원인이나 이유로 지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껏해야 신문, 잡지나 읽고 인터넷이나 보고 시시한 책이나 읽는 사람들이 내놓는 문화 비평이라는 것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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