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0

정보 전달과 수식어



글을 쓰라고 하면 멀쩡하게 못 쓰고 꼭 미친 사람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글에 수식어나 비유를 넣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딘다. 말끔하게 쓴 글을 보면 꼭 초등학생이 쓴 글 같다면서 어떻게든 군더더기를 덕지덕지 붙이고야 만다.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럴까?

좋은 글의 기준은 여러 가지라서 한 가지 잣대로 글을 평가할 수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꼭 글 못 쓰는 사람들이 그딴 소리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정말로 좋은 글의 기준이 여러 가지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좋은 글의 기준은 있다. 바로, 정보 전달이다.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쓰든,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평론이든 감상문이든 수필이든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수식어나 비유 등도 정보 전달과 관련된다. 구술로 전승되던 작품에는 처음부터 문자로 작성된 작품보다 수사적인 표현이 더 많다. 그러한 표현에는 문학적인 기능도 있지만 정보 전달의 기능도 있다. 구술 문학에서의 수식어는 화자가 말하는 단어를 청자가 동음이의어의 다른 뜻이나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로 혼동할 가능성을 줄여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승할 때 정보 손실률을 낮춘다. 예를 들어, ‘아기’와 ‘악의’는 해당 단어만 듣고서는 둘 중 어느 단어를 말하는 건지 헷갈릴 수 있지만, “쌔근쌔근 자는 아기”라는 말을 듣고 “쌔근쌔근 자는 악의(惡意)”를 떠올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구술 문학에서의 수식어는 여러 번 들을 필요 없이 한 번만 듣고도 내용을 파악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불필요하게 붙는 수식어는 오히려 글의 정보 전달을 방해한다. 정보 전달 기능이 떨어지더라도 문학적인 기능이 보강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대개는 추한 것에 추한 것이 덧붙는 경우라서 이중으로 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러면 불필요한 수식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은 왜 수식어를 탐닉하는가? 왜 그들에게 수식어가 적은 글은 초등학생이 쓴 글처럼 보이는가? 그들이 초등학생처럼 글을 못 쓰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초등학생이 쓴 글 같다고 하는 글을 보자. 대개는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법이다. 글 못 쓰는 사람들 주변에는 죄다 비슷하게 글 못 쓰는 사람들이고, 이상한 글에 환장하는 사람들 주변에는 죄다 이상한 글에 환장하는 사람들이다. 글이라고 써봤자 개똥 같은 글이고, 좋다면서 가져와 봐야 정상적인 글이 아니다. 아무리 글을 개떡 같이 쓰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글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수식어가 적다는 이유로 헤밍웨이의 글을 두고 초등학생이 쓴 글 같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수식어가 아니다.

수식어에 탐닉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초등학생이 쓴 글 같은 것이나 쓰는 주제에 정보 전달이 안 되게끔 글에 온갖 수식어를 쳐바르며 좋아한다. 표현이 어쩌네 일부러 역설적인 효과를 주었네 하며 자기들끼리 핥고 빨고 즐거워하지만, 이는 단지 정보 전달이 안 되어서 글의 파편들을 탐닉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들의 글에 달라붙어 있는 수식어를 제거하고 요점만 깔끔하게 남겨놓는다고 해보자. 위장막 역할을 하는 수식어가 사라지고 빈약한 내용과 엉성한 구성이 눈에 보이니 불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이 쌓인 똥밭에서 눈이 녹아 똥이 드러나는 것처럼, 초등학생이 쓴 것 같은 글이 드러나는 것뿐이다. 아무리 글 보는 눈이 없더라도, 자기 글이 엉성해 보이기는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수식어를 탐닉하는 사람들은 글 변태가 아니라, 자기들이 글을 더럽게 못 쓴다는 사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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