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3

영화 <리얼> 감상문



무엇을 본 것인가. 꿈을 꾼 것인가. 나는 영화 <리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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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얼>의 줄거리를 모르겠다. 나는 분명히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두 눈을 뜨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슨 내용인지 정리하지 못하겠다. 뭔가 굉장한 것을 본 것 같다는 인상은 남는다. 아니다. 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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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파편적인 기억은 있다. 극 중 김수현은 1인 3역을 하고 온 몸에 문신을 하고 특정 부위에 구슬을 박았으며, 성동일은 연변 사투리를 쓰는 잔인한 깡패이며, 이성민은 도박을 즐겨하고 환자에게 마약을 처방하는 정신과 의사이며, 설리는 그냥 연기를 못했다. 깡패들은 김수현한테 주먹 한 방 맞으면 석고상처럼 몸이 굳은 채로 바닥에 꼬꾸라졌고, 여자들은 반쯤 벗거나 다 벗고 나왔으며, 화면은 항상 어두웠다. 영화에 아까 본 것 같은 장면이 또 나오고 그와 비슷한 장면을 또 나와서 내가 영화를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내가 착각을 하거나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몸이 나른해졌다.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헷갈리면서 ‘이게 현실인가. 아, 이래서 영화 제목이 <리얼>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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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통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영화 보고 아무 말이나 지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겠냐만은, <리얼>은 그러한 다른 영화보다도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다른 영화들이 관객에게 무엇이 정의인지, 실재와 가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면, <리얼>은 더 근본적인 문제, 즉 동일률이란 무엇인지 같은 것들을 묻는다. 영화에서 김수현은 깡패이자 르포 작가이자 부자로 1인 3역을 맡는다. 분명히 김수현이 김수현을 죽였는데 죽은 줄 알았던 김수현이 살아있고 김수현을 죽인 김수현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김수현이 아니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 보통은 개연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데, 영화 <리얼>을 보면 개연성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런 영화는 영어 자막을 넣어서 지젝한테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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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애들이 “인생 영화”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이 없으면 고작 그런 거 하나 가지고 인생 영화라고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살이가 조조 영화 본 것을 점심 먹으면서 인생 영화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래서 나는 웬만한 것을 보고도 인생 영화 같은 소리를 안 했는데, 영화 <리얼>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리얼> 정도면 누구라도 인생 영화라고 해도 될 만한 영화다. 앞으로 최소한 30년 안에는 한국 영화 중에 <리얼> 같은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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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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