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7

동양철학 뻥쟁이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 EBS 보니까 앞으로 철학이 뜬다더라. 내가 잘 모르지만 아들이 철학 전공하니까 채널 돌리다가 조금 봤다.” 무슨 프로그램이었을까. 어머니는 잠들기 직전에 본 거라서 무슨 프로그램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말에 나는 “무엇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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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뻥쟁이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서 EBS 편성표를 찾아보았다. 마침 동양철학 뻥쟁이와 뇌 과학 뻥쟁이가 인류 문명의 향방을 놓고 만담을 벌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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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뻥쟁이는 서양 문명이 동양 문명을 앞서기 시작한 계기가 산업 혁명이라면서 산업 혁명의 원인을 놓고 뻥을 쳤다. 관련 연구가 수없이 많을 텐데 동양철학 뻥쟁이는 그런 연구를 다 무시하고 “더 좋은 옷을 입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산업 혁명을 이끌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여간 뻥쟁이들은 대담하다. 그러면 동아시아에서는 잘 먹고 잘 살 욕심이 없어서 산업 혁명이 안 일어났나? 그러면 명청대의 은화 유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두 뻥쟁이는 정화의 원정대와 콜럼버스의 원정대를 놓고 비교하며 동양 문명의 특징과 서양 문명의 특징을 논했는데, 동양철학 뻥쟁이는 이것도 죄다 욕망으로 설명했다. 하여간 뻥쟁이들은 세상을 참 쉽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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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양철학 전공자 대부분이 자기 공부 열심히 하는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서양철학 전공자 중 뻥쟁이의 비율보다 동양철학 전공자 중 뻥쟁이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학부 때 본 동양철학 교수 중에도 “공자는 동이족이고 동이족은 한국인이니 공자는 한국인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이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했고 플라톤 철학은 이데아가 핵심인데 이데아 같은 건 없으니까 서양 철학은 배울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면서 논문에다 밑도 끝도 없이 나선 모양을 그려 넣은 사람도 있었다. 이 정도면 공부나 전문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정신건강의 문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교수들만 그랬으면 또 모르겠는데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학부생들까지도 그런 소리를 듣고 헬렐레하는 판이라서,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 대학원은 반드시 서양철학으로, 그리고 다른 학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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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학회에서 어떤 동양철학 교수가 “그런데 동양에는 과학이 없었잖아요?”라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교수가 쓴 책이 15년 전쯤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는데 그 당시 방송에 나와서도 그 교수는 동양에는 과학이 없었다고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문제는 그 학회에 동양과학사 전공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양에 과학이 없었으면 동양과학사 전공자들은 뭐가 되나? 그건 신학자들 앞에서 “그런데 신은 없잖아요”라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양과학사 전공자들은 동양철학 교수의 그러한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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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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