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대학원에서 하는 <영미철학 대학원생 워크샵>에 갔다. 한동안 안 가다 오랜만에 갔다. 논문도 통과되어 급한 일도 처리되었으니 이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연구도 보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워크샵 끝나고 선생님은 뒤풀이로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원래 워크샵 끝나고 길거리에서 일곱 알에 2천 원 하는 문어빵을 사서 자취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실 생각이었다. 순순히 뒤풀이에 따라갔다. 선생님을 포함하여 열 명 정도가 맥주집에 갔다.
사람들은 그날 워크샵 주제인 피터 행크스의 명제 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는 행크스는 톰 행크스밖에 없어서 구석에서 조용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떤 대학원생이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았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놀라서 “선생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돼!” 하면서 제지했지만 이미 선생님은 “◯◯◯씨가 페이스북에 어떤 글을 쓰는데요?”라면서 궁금해 하셨다.
나는 내가 페이스북에 쓰는 글이 그리 부끄러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료들이 내 글을 읽고 재미있어 하는 것과 그러한 사실을 선생님이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남들이 3년이면 쓰는 석사 논문을 나는 4년 넘게 걸려서 썼고, 그렇게 쓴 논문이 그다지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에이스도 아닌데, 이런 내가 개그 글이나 쓰고 앉았다는 것이 선생님께 알려지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국내 등재지에 논문 한 편이라도 싣고 나서 그러한 사실이 알려졌다면 덜 쑥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해명했다. 내가 살면서 즐거울 일이 많지 않아 술을 마시거나 개그 글을 쓰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즐거울 일 없는 대학원생들이 그런 글을 재미있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대학원생들이 선생님께 내가 쓴 글을 하나씩 소개했다. 심지어 페이스북도 안 하는 대학원생은 블로그에 내가 쓴 글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 블로그는 내 블로그가 맞다. 페이스북은 게시글을 정리하기 힘들어서 쓴 지 한 달 이상 지난 글은 블로그에 옮기거나 지운다. 그 대학원생은 그 블로그를 본 것이다.
블로그에 게시한 내 글을 읽은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김창완처럼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씨, 정말 재능 있군요!”
선생님은 석사 논문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었다. 재능 있다는 말을 논문 심사장에서 들었어야 했는데.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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