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5

나는 왜 창의적이어야 하는가?



사람은 왜 창의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살던 대로 사는 건 쉽고 창의적으로 사는 건 어려운데 왜 굳이 창의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어제 먹던 밥에 그저께 먹던 반찬 먹으면서 적당히 살면 안 되나? 왜 세상에 없던 것,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혜정 박사는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창의성 교육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몇십 년 만에 일약 10위권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는 전교 꼴찌가 어느 날 갑자기 전교 10위권으로 진입한 사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교 꼴찌가 전교 10위권이 되려면 암기과목만 죽어라 공부해서 가능할지 모르나, 전교 10위가 전교 1등으로 한 번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암기과목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10위권을 넘어 1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교육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25쪽)


한국 언론에서 논의되는 창의성 교육의 당위성은 딱 이 정도 수준이다. 개인이 창의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는 1) 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 2)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 3) 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다. 창의성이 잘 먹고 잘 사는 수단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의성이 그러한 수단이고 그 이외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면, 창의성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능할 경우 창의성 교육 같은 것은 필요 없어질 것이다.

세계의 두뇌가 한국에 모이고 한국이 부자 나라가 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히틀러가 유럽을 휩쓸자 유럽의 고급 인력들이 미국으로 건너온 것 같은 상황이나 한국이 선진국이라서 변방의 인재들이 알아서 몰려오는 상황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한국 본토에 사는 사람들은 별다른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돈도 많이 벌고 복지 혜택도 잘 받을 수 있다. 창의성 있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창의성을 발휘하면 한국 본토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나라는 점점 발전한다. 2016년 노벨상 수상자 중 미국인은 여섯 명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이민자 출신이다. 한국이 미국 같은 상황이라면 굳이 창의성 교육 같은 것을 안 하더라도 그렇게 염원하던 노벨상을 손쉽게 받을 수 있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셰일가스층이 있다면 또 어떨까. 이런 경우에도 창의성 교육은 필요한가?

창의성이 꼭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연구 개발에는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비용과 시간을 들인다고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결과물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괜히 새 상품을 내놨다가 시장 점유율이 줄어드는 기업도 있고, 새로운 사업 벌였다가 통째로 망하는 기업도 있다. 1등을 그대로 따라가는 2등 전략만 잘 펴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오히려 망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는 데는 2등 전략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선진국 비슷한 나라에 사는 국민은 선진국 국민만큼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선진국이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것을 잘 베껴오기만 해도 번영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다면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한국은 왜 1등 국가가 되어야 하며, 한국인들은 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가?

한국 사람들은 교육열이 높다고 하는데 언론에 나오는 교육 논의를 들여다보면 정작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중등교육에서는 입시 이야기뿐이고, 고등교육에서는 노벨상 이야기뿐이다. 교육의 목적 중 하나가 생존과 변영이라는 것은 개도 알고 소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런데 그것뿐인가? 창의성이 왜 중요한지 갖다 붙일 말이 그렇게도 없나?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욕구가 있고, 그러한 욕구는 다른 짐승이나 기계와는 다른 인간 고유의 본능 같은 것이고,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는 것이고 그래서 창의성 교육이 중요하다, 이 정도 말을 갖다 붙이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같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박사나 교수라면서 창작의 즐거움 같은 것을 몰라서 그러는가?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사가 없어서 그런 말을 갖다 붙이면 남사스러워서 그러는가?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 가까이 되어도 언론만 놓고 보면 박정희 시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논의 수준이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선진국처럼 잘 살아보세’ 딱 이 정도다. 이런 나라에서는 1인당 국민 소득이 4만 달러가 되어도 싱가폴처럼 5만 달러가 되어야 한다면서 사람들을 쥐어짤 것이고, 국민 소득이 5만 달러가 되면 스위스처럼 8만 달러가 되어야 한다면서 또 쥐어짤 것이다. 교수・박사라는 사람들이 방송이나 신문에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왜 새마을노래인가?

(20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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