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내문을 전원주택 단지 집집마다 나누어준 이후로, 내가 진입로에서 하는 작업과 관련하여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안내문을 나누어주기 전에는 내가 전원주택 동쪽 진입로에서 작업할 때 꼭 주민 중 일부가 불만을 표하거나 항의했는데, 안내문을 나누어준 이후로 거짓말처럼 단 한 명도 나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내가 망치로 길바닥을 내려치든 곡괭이로 콘크리트 덩어리를 뜯어내든 외발수레로 흙을 퍼나르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저들의 권리와 나의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그 선을 명확히 알려주니 그렇게 되었다.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주민들이 아무 불만도 가지지 않게 한 다음, 나무를 옮겨심는 일을 진행했다. 전원주택 동쪽 진입로에 보강토 블록으로 만든 화단이 두 개 있는데, 그 사이가 나무를 옮겨 심었다. 화단 사이가 너무 넓어 덤프트럭 등 대형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그 사이를 줄일 필요도 있었고, 차량이 화단을 들이받아 화단이 상하지 않게 하도록 화단을 보호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큰 나무 두 그루를 심으면 길이 너무 좁아질 것 같아서 큰 나무 한 그루,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기로 했다.
8월 초에는 철쭉을 뽑아 옮겼다. 8월은 너무 더워서 나무를 옮겨심기 적합하지 않았지만 통째로 뽑아 옮겨서 나무가 어떻게 살기는 살았다. 나무를 옮기는 과정에서 잠시 균형을 잃어 외발수레가 휘청했는데, 그 때 내가 곧바로 외발수레 손잡이를 잡고 균형을 잡으려고 하다가 외발수레가 손잡이가 부러져서 철쭉이 굴러떨어졌다. 그랬는데도 철쭉이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외발수레를 고치려고 했는데 바퀴 이외의 손잡이 등 다른 부품을 따로 팔지는 않아서 결국 외발수레를 새로 샀다. 12만 원이 들었다.
9월 초에는 집 앞 화단에서 대추나무를 뽑았다. 대추나무 주위를 돌면서 삽으로 흙을 퍼냈다. 나무를 뿌리째 떠낼 때 흙덩어리는 나무가 살 정도로 크면서 구덩이에서 꺼낼 정도로는 작아야 한다. 옮겨심었을 때 나무가 살 수 있는 최소 크기를 확보하고 부직포를 둘러 뿌리에서 흙이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무를 구덩이 밖으로 꺼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크기도 크지만 흙이 물을 많이 먹어서 무게가 많이 나갔다. 예전에 배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겨울이라 나무를 약간 굴려도 뿌리에서 흙이 붙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을이라 나무를 잘못 굴렸다가는 뿌리에서 흙이 다 떨어질 판이었다. 결국 옆옆집의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포크레인으로 대추나무를 옮겼다.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고 대추나무를 넣고 흙을 덮었을 때, 아저씨가 보기에 약간 나무가 틀어졌던 모양이다. 땅에 묻은 대추나무를 포크레인으로 살짝 들어올린 다음 몇 번 흔들었다. 아저씨 딴에는 잘 해주려고 그랬던 것 같고 정말로 나무도 더 반듯하게 섰는데 그게 화근이었는지 그 다음날부터 나무가 비실비실했다. 내가 대추나무를 뽑았을 때는 구덩이에 며칠 방치했어도 나무가 팔팔하고 잎에 윤기가 돌았는데 나무를 옮겨심은 그 다음날부터 잎에 힘아리가 하나도 없고 노랗게 변하더니 나뭇가지를 손으로 톡 건들기만 해도 잎이 우수수 떨어지게 되었다. 나무를 옮겨심은 다음에 잘 밟기는 했지만 그래도 뿌리에서 흙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무를 살리려고 집에서 물을 퍼날랐다. 나무 근처에 물을 부어봤자 대부분은 그냥 흘러가기 때문에 나무 근처에 땅을 파서 이중관을 세로로 꽂은 다음 그 안에 물을 부었다. 옮겨심은 자리가 모래땅 같은 데라서 물을 부어도 고이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물이 고일 때까지 물을 부으면 된다.
2-3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계속 물을 부으니 나중에는 하루에 한두 번만 물을 부어도 물이 이중관에 고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대추나무 잎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물을 따로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 뱀발
대추나무 근처에서 작업하다가 가시에 여러 번 찔렸다. 일하다가 나무 가시에 찔리는 건 흔한 일이라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가시 찔린 자리에 며칠 동안 가려웠다. 살에 가시가 박혀있나 싶어서 보니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가시에 독이 있나? 구글과 네이버에 “대추나무 가시 독”이라고 검색해봤는데 딱히 제대로 된 답변은 없었다. 대추나무 가시에 독이 있는지 묻는 게시글은 여럿 있어서 나처럼 대추나무 가시에 독이 있나 의심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예전에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다른 나무도 아니고 왜 대추나무에 사랑이 걸리나 했는데 가시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2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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