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벌초하다가 손에 땅벌에 쏘였다. 어렸을 때 땅벌에 쏘였던 적이 있기는 있는데 그 때는 늦가을인가 초겨울인가 하여간 땅벌이 힘이 없을 때라서 쏘였어도 별로 타격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땅벌이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초가을이다. 손바닥에 딱 한 방 쏘였는데 처음에는 잠시 따갑고 별 문제 없는 듯하더니 하루 지나니 퉁퉁 부어서 손 두께가 1.5배 정도가 되었다.
작년 가을에는 내가 예초기로 벌초했다. 원래 같으면 농협에 가서 예초기를 고쳐온 다음에 벌초를 했을 것인데, 올해는 신개념으로 풀을 손으로 뽑아서 벌초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억새는 아니고 억새와 비슷한 풀이 있는 대로 자라서 봉분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풀을 조금씩 잡고 뽑으니 뿌리의 일부가 끊어지면서 대충 뽑혀나왔다. 뿌리가 땅에 약간 남았지만 어쨌든 타격을 입으니 곧바로 풀이 다시 자라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손으로 뽑아도 벌초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업체를 불러서 벌초하면 50-60만 원 정도가 드니, 그냥 내가 손으로 풀을 뽑기로 하고 업체를 부르지 않았다.
억새 비슷한 풀을 뽑을 때는 손가락 관절이 약간 아프기는 했지만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산소 위쪽에 있는 억새 비슷한 풀이 아니라 진짜 억새를 뽑는 건 다른 일이었다. 억새는 여간해서 뽑히지 않았다. 낫으로 억새를 제거하는 중에 땅벌에 쏘였다.
땅벌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몰랐다. 오른손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고 놀라서 주위를 보니 땅벌이 유유히 날아가고 있었다. 장갑을 벗어서 땅벌에게 휘둘렀으나 땅벌을 잡지는 못했다. 손바닥 아래쪽에 땅벌이 침을 꽂은 자국이 있었다. 침을 꽂은 자리의 근처는 살이 하얀색이었고 그 바깥쪽으로는 살이 약간 붉은 색이었다. 손이 저릿하면서 통증이 잠시 있었지만 별로 붓지도 않았다. 말벌도 아니고 땅벌이니 약간 따끔한가보다 했다.
밤에 자다가 손이 가려워서 깼다. 모기가 물었는지 손이 가려웠다. 모기를 잡기 위해 불을 켜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모기는 없었다. 자다가 손이 가려워서 밤에서 깼다. 모기를 잡으려고 했는데 못 잡았다. 못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방에 모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기가 물어서 손이 가려운 게 아니라 낮에 땅벌에게 쏘인 것 때문에 손이 가려웠던 것이다. 그러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손이 퉁퉁 부어서 1.5배 쯤 두꺼워졌다. 손목도 비슷하게 부었다.
꿀벌에게 쏘였을 때와 비교해보면, 꿀벌의 독은 땅벌의 독에 비한다면 정말 순한 편인 것 같다. 살에 박힌 꿀벌의 침만 잘 제거하면 암모니아 수 같은 것을 바르지 않아도 별 문제가 안 생긴다. 땅벌은 살에 침이 박힌 것도 아닌데도 손이 띵띵 부어서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닿지 않는다.
몇 년 전에 『고금소총』에서 영 좋지 않은 곳이 땅벌에 쏘인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날씨가 쌀쌀해져서 비실비실해진 땅벌에게 쏘인 뒤라서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독이 바짝 오른 땅벌에게 쏘이니 그런 이야기를 왜 지어냈는지 대충 알 것 같다.
교회 가는 길에 친척 할머니께 땅벌에 쏘인 손을 보여드렸다. 친척 할머니는 퉁퉁 부은 손을 보고 놀라면서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셨다. 그 할머니는 예전에 벌초하다가 땅벌이 아니라 말벌에게 머리를 수십 방 쏘여서 머리가 퉁퉁 부었다고 한다. 그렇게 벌에 쏘이고도 다행히 죽지 않아서 머리가 부은 채로 송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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