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8

오동나무 줄기에 난 잎

밭을 둘러보는데 잘라놓은 오동나무 줄기에 잎이 나 있었다. 작년 말인가 올해 초인가, 하여간 도랑 근처에서 자라는 오동나무가 너무 크지 않게끔 죽지 않을 만큼 잘라서 가지는 다 쳐내고 줄기는 내던져놨었다. 그런데 그런 오동나무 줄기에 잎이 나 있었다.

뿌리 없는 나무에도 잎이 나다니. 나는 올해도 아사히베리 가지를 30개 정도 잘라서 꺾꽂이를 했기 때문에 가지를 꺾어서 번식한다는 것 자체는 그리 신기하지 않은데, 버려진 나무줄기에 잎이 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 다소 신기했다. 절에 가면 옛날에 무슨 대사가 지팡이를 꽂은 게 잎이 나서 몇 백 년 수령의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오동나무 줄기를 보며 생각했다. ‘나무는 생명력이 강하구나. 스님 도력 때문에 지팡이가 나무가 된 게 아니겠다.’

오동나무 줄기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는데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오동나무에 물기가 있어서 잎이 난 것이라 하나도 신기한 일이 아니며 어려서 외할아버지가 오동나무를 베어서 울타리를 만들 때마다 있었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라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었는데, 내가 이런 일을 못 봐서 신기해했던 것뿐인가 보다. 왜 나는 마흔 살이 다 되어서야 이런 일을 보고 신기해했을까? 어머니는 내가 아직 학문적 <마지막 잎새>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닌가? 내가 학문적 <마지막 잎새> 상태였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으려나?

자연 현상을 보고 어떤 교훈을 얻는 것은 매우 원시적이고 유치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오동나무 줄기에 난 잎을 보면서 ‘뿌리 없는 나무에도 잎이 나는데 나는 언제 잎이 나나?’ 하고 생각했다. 그만큼 현재 내 마음이 약하다는 것이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동나무 줄기를 도랑 근처에 심어보았다.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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