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9

유교의 비용과 효용



다니고 있는 학교의 평생교육원을 통해서 아르바이트가 들어왔다. 고등학생에게 “동서양의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라고 한다. 이번에도 담당 교사가 주제를 잘못 잡은 것 같다. 이렇게 주제를 넓게 잡으면 강사의 재량권이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맞기는 맞는데, 그래도 이렇게 주제를 잡으면 서양철학 대학원생, 동양철학 대학원생, 서양사 대학원생, 동양사 대학원생이 모두 강좌를 안 맡게 된다. 그래서 나한테 왔나 보다. 영상이 남는 것도 아니고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맡아서 하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유교의 비용과 효용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한국은 지금처럼 선진국이 아닌 데다 IMF 금융위기를 맞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사람들이 맛이 안 좋았다고, 그래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말하자, 학생들이 책 제목에 웃음이 빵 터졌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니, 얼마나 웃긴가? 말 같지도 않은데 비장하기까지 하니 더 웃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이 나왔을 당시 한국 사회는 그 책을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사회과학 전공도 아니고 갑골문 연구하던 아저씨가 아무 말이나 써놓은 것이 사회적으로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지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사는지 말도 안 되는 논쟁이 벌어지다 정말로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비슷하게 말도 안 되는 책도 나왔었다.

그런데 유교적 관습이라는 게 아무 쓸모 없이 사람이나 괴롭히는 것인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과거 사회에서 여성이 억압받고 차별받은 것이 정말 유교 탓인가? 유교 안 했으면 남녀가 평등했을까? 기독교였으면 남녀 차별 안 했을까? 고대 사회치고 남녀 차별 안 하는 사회도 있나?

유교적 관습 중 남녀 차별 같은 건 확실히 나쁜 거라고 치고, 혹시 이상해 보이는데 따지고 보면 나름 동아시아 문명이 유지되고 발전하는 데 기여한 것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꼽은 것은 적장자가 왕위나 가계를 승계할 때 특권을 가진다는 원칙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적장자 상속은 말도 안 되는 풍습이다. 능력이 있는 자손한테 왕위를 넘겨야지 적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고대나 중세 사회에서 적장자 승계 원칙 말고 마땅한 다른 방법도 있을 법하지 않다.

왕조를 개창할 때는 왕자들 중 누가 공이 큰지, 누가 능력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으니까 능력에 따른 승계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왕조가 기틀이 잡혀 있고 왕자들이 아예 궁궐에서 태어난 경우라면 누가 능력이 있는지 쉽게 가려내기 어려울 수 있다. 이준석 같으면 왕자들 중에서 왕위 계승 자격 시험 같은 것을 보게 하자고 하겠지만, 시험 잘 본다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왕자들한테 실무를 맡겨보고 업무 능력이 나은 왕자한테 왕위를 넘길까? 업무 능력이 나은 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첫째 왕자에게 병조 업무를 맡기고 둘째 왕자는 호조 업무를 맡기나? 아니면 첫째 왕자한테는 전라도를 맡기도 둘째 왕자한테는 경상도를 맡기나? 그러다가 역모 난다.

어차피 대부분의 실무는 신하들이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왕자들 중 누가 하든 나라는 돌아간다. 어느 왕자가 해야 하느냐? 가장 먼저 태어난 왕자가 맡는다. 이런 원칙이 있었어도 적장자가 왕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런 원칙이 있는 상황에서 적장자가 맛이 안 좋아서 다른 왕자가 왕이 되는 것과 아예 그런 원칙이 없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왕위 계승 과정에서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후자는 왕위 계승 과정마다 내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유목 민족들이 세운 국가가 오래 가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도 왕위 계승 원칙이 없거나 잘 지켜지지 않아서라고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유교적인 질서가 유지되었을 때의 비용(차별 등)과 편익(문명의 안정성)을 비교하면 아마도 편익이 훨씬 클 것이다.

유교적 관습의 효용은 이미 옛날에 끝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날 유교와 관련된 것을 배우는 게 무슨 쓸모가 있을 것인가? 아마 별 쓸모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마치 기독교인이 성서를 보는 것처럼, 유교 경전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관통하는 불멸의 진리라도 있는 것처럼 여겼던 한문쟁이들이 꽤나 있었다. 학부 때 보았던 일부 미친 동양철학 교수도 대체로 그러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일찍이 고힐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만약 많은 경서를 우리 앞에 쌓아놓고 어떠한 사용방법이 있겠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간단히 무용(無用)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경(詩經)』의 시는 이미 노래하는 사람이 없고, 『역경(易經)』의 점괘를 우리는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경(禮經)』 또는 『예기(禮記)』의 번잡한 예절은 보기만 해도 두통이 생긴다. 『춘추(春秋)』의 포폄(褒貶)은 완전히 계급사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결코 현대적인 윤리는 아니다. 『상서(尙書)』에 기록된 이야기는 항상 상제(上帝)와 선조(先祖)에게 호소하고 있으며, 우리의 이지(理智)로는 도저히 이러한 신봉을 따를 수 없다. 이러한 것에는 실로 무용(無用)의 용(用), 결국 그 사료적 가치밖에 없는 것이다. 한(漢) 이전의 자료로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극히 적으며, 갑골문(甲骨文)과 종정문(鐘鼎文)을 제외하면 볼 수 있는 것은 이들 몇 부의 경서밖에 없다. 갑골・종정의 자료는 물론 신뢰할 수는 있지만 모두 단편적이며, 몇 부의 경서 쪽이 다소 계통성이 있다. 이 다소 계통성 있는 서적의 자료를 계통성 없는 지하의 실물(實物)과 연결지어 상호간에 증명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진실한 상고사(上古史)―완전하게 진실된 것은 불가능하겠지만―를 쓸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중국] 고대의 민족과 사회는 대체 어떠했는지, 그리고 우리의 선조가 고생하여 조직하고 오리에게 전해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 유일한 이용방법이다. 이 이용방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것 또한 우리가 맡은 새 시대의 사명이다.(124-125쪽)


학생들에게 유교의 효용은 어떤 것이었을지, 오늘날 그런 걸 배워서 무슨 소용인지 장황하게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정작 유교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를 안 했다. 다음 시간에는 서양 이야기를 해야 하고 다다음 시간에 다시 동양 이야기할 때 유교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하기는 해야겠다.

* 뱀발

학생들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 제목에 웃음이 빵 터져서 내친 김에 『일본은 없다』라는 책도 베스트셀러였다고 말했다. “얘들아, 일본은 없대. 옆 나라에 멀쩡히 일본이 잘 있는데 자기들끼리 일본에 대한 망상을 해놓고는 일본은 없대. 그게 30년 전 베스트셀러야.” 학생들은 자기들이 태어나기 전에 그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과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과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가 있었는지 어른들이 학생들한테 일본이 있는지 없는지 토론을 시키기까지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학생들을 더 놀래키고 싶어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책이 사실은 기자가 남이 쓴 원고를 거의 통째로 훔쳐서 출판한 것이고, 그 기자 출신 작가는 그 책의 흥행에 힘입어 국회의원이 되었고, 표절 사실이 법원 판결로도 확인되었는데도 여전히 보수 인사라고 거들먹거리고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몇몇 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참고 문헌

고힐강(顧頡剛), 『중국 고대의 방사와 유생』, 이부오 옮김 (온누리, 1991)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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