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어떤 건설업체에서 우리집 밭과 인접한 산을 대지로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 건설업체에서는 자기네 공사하는 김에 우리집 토지 안에 있는 폐가의 울타리를 철거해주겠다고 했다. 철판을 이어붙인 울타리 사이에는 석면 슬레이트를 여러 개 끼어 있었다. 업체에 전적으로 맡겼다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르고 석면 슬레이트를 깨부술 판이었다. 그렇다고 석면이 몇 판 되지도 않는데 건설업체에서 석면 철거 업체를 부르면 건설업체에서 부담할 비용이 너무 클 것이었다. 어차피 내가 내년에 시청에 요청하여 석면 슬레이트 작업에 필요한 보조금을 받을 것이어서, 일단은 울타리 철거 작업 과정 중 나오는 석면 슬레이트를 폐가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아침 7시 30분쯤부터 외국인 노동자들과 폐가의 울타리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울타리에 덩굴식물과 나무가 엉켜있어서 작업하기 곤란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낫질을 하는데 잘 못해서 내가 덩굴식물 등을 제거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철판 등을 어디로 옮겨야 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판을 하나씩 떼어내서 나에게 주면 내가 알아서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철판과 플라스틱 등을 따로 쌓아놓았다. 그러면서 석면 슬레이트는 절대로 부수지 말고 그대로 나에게 달라고 했다. 나는 석면 슬레이트를 받아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창고로 옮겼다.
작업이 다 끝나고 나서 어떤 외국인 노동자가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 그거 비싼 거예요?” 내가 하도 조심스럽게 옮기니까 비싼 거라서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노동자에게 석면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이며, 그러한 물질을 과거에는 왜 사용했고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등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어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석면이 영어로 무엇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말했다. “It is cheap but very dangerous thing causing lung cencer.”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왜 그런 방식으로 영어를 사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위험한 물질이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운반하는 것을 보고 비싼 것이어서 저런다고 생각하다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에 아무리 경고 메시지를 남겨놓아도 1만 년 뒤의 사람들은 보물이 묻힌 곳이라서 그런 표시를 남겼다고 오해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2022.10.22.)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