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응 교수의 “믿을 수 없는 그 잘난 교수들”이라는 글의 흥미로운 점은, 글쓴이가 마치 “여러 해가 지나서야 교수들은 성과급제의 본질을 알게 되었”던 것처럼 서술했다는 점이다. 성과급제가 도입될 때 교수들은 성과급제의 본질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았지만 자기가 성과급제의 희생양이 될 줄을 몰랐을까?
[...] 내가 속한 대학은 지난 10여 년 큰 변화가 있었다. 우선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급여 방식이 변하였다. 이는 근무 기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임금 상승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로든 급여가 동결되면 경력에 따른 임금 인상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률만큼 임금이 삭감되기도 한다. 급여 동결은 경제성장률에 맞춘 임금 인상 역시 없다는 뜻이기에 경제 전체로 볼 때 상대적 임금 삭감도 따라온다.
또한 교수의 업적을 상대적으로 평가하고 그 평가 결과를 급여에 반영시키는 성과급제가 도입되었다. 교수를 S, A, B, C급으로 분류하여 S급과 A급에게는 평균 이상, B급에게는 평균, C급에게는 임금 동결과 연구실 회수의 방식으로 보상과 징벌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평균적 성과로 B급을 받을 것이라 예상되는 교수들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자신에게는 별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하였다 (나도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많은 교수는 좀 더 열심히 성과를 내면 평균 이상의 성과급을, 당시 급여 수준을 훨씬 넘는 급여를 받을 것을 기대하여 성과급제 도입에 찬성하였다. 자신이 C급이 된다고 생각하는 교수는 별로 없었다(교수는 항상 최우수 학생이었다. 어떻게 자신이 열등생인 C급 교수가 되겠는가). 심지어 S급, A급 교수들에게 평균 이상의 성과급을 주면 대학 예산이 멀지 않아 고갈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교수도 있었다. B급 교수들에게는 호봉제에 해당하는, 이전과 마찬가지의 급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
(1)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급여 방식이 변하면서 근무 기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임금 상승이 없어졌다.
(2) 성과급제가 도입되었다. 교수를 S, A, B, C급으로 분류하여 S급과 A급에게는 평균 이상, B급에게는 평균, C급에게는 임금 동결과 연구실 회수의 방식으로 보상과 징벌을 하기로 했다.
이 두 가지만 고려해도, 성과급제를 도입하면 대다수 교수들의 실질 임금은 감소할 수밖에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B급 교수가 평균 연봉을 받더라도 호봉 상승분 손실, 물가상승, 경제성장 등을 고려하면 실질 임금이 삭감되는 셈이니 손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는가? 그런데 이에 대해 글쓴이는 마치 성과급제의 본질을 아는 해당 학문의 교수들이 침묵해서 대다수의 교수들이 그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말한다.
여러 해가 지나서야 교수들은 성과급제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교수의 급여는 10여 년 동안 거의 정체되어 있다. 사실 호봉 상승분 손실, 물가상승, 경제성장 등을 고려하면 임금은 계속 삭감되어왔다. 교수들은 기만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성과 연봉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자기들에게 닥칠 문제를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임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제학 경영학 교수들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다른 교수들에게 성과 연봉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설명하지도 않았다.
[...] 이 모든 상황을 해당 분야의 전공 교수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분야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자신이 속한 교수 집단을 위해서도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법률 전문 교수들은 교수의 동의 없는 성과급제 도입이 노동 관련 법률을 위반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법을 모르는 나도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법률 위반 행위였다). 경영학이나 경제학 전공 교수들은 성과급제 임금 제도가 교수들의 근무 조건을 어떻게 악화하는지 몰랐을 리 없다. 또한 성과 제고에 따른 보상으로 교수들이 요구할 수 있는 근무 조건 개선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어떻게 해야 교수들의 요구가 관철될지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글쓴이는 “임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제학 경영학 교수들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다른 교수들에게 성과 연봉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설명하지도 않았다”고 탓하지만, 이러한 간단한 사실을 아는 데는 교양 수업의 경제학이나 경영학 지식도 필요 없다. 교수들이 훤히 보이는 예정된 파국을 몰랐던 것도 아니며 글쓴이가 말한 것처럼 “여러 해가 지나서야 교수들은 성과급제의 본질을 알게 되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가 험한 꼴을 당할 줄 알았는데 그게 자기가 될 줄 몰랐던 것뿐이다.
이것만 봐도 경제학과와 경영학과의 교수들이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성과급제의 본질을 다른 학과 교수들에게 숨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학생 시절부터 교수가 되기까지 한 번도 저-성과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학에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S급, A급 교수들에게 평균 이상의 성과급을 주어 대학 예산이 고갈될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성과급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차피 단체행동 자체가 안 될 것이니, 경제학과와 경영학과의 교수들로서는 입이나 다물고 있든지 학교 측에 붙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교수들 대다수가 자기는 B급 이상이니 C급 교수는 어찌되든 알 바 아니라고 하다가 경제학・경영학・법학 교수들이 대학 경영진을 옹호하는 것을 두고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교수들만의 일인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이와 크게 다를까? 정도 차가 있지 다 비슷해 보인다. 누군가가 쫓겨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자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배신하고 배반하는 놈이 있고, 사장 편에 서는 놈이 있고, 그 와중에 인정욕구를 이기지 못해 분탕 치는 놈이 있고,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여 공동체를 파멸로 이끄는 놈이 있고,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데 정신 놓고 자포자기하는 놈이 있지 않나? 그리고 사실은 맨 처음부터 다들 웬만큼은 알고 있었는데, 뒤늦게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올 때가 되어서야 나는 몰랐다고, 속았다고 외치며 순진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닌가?
* 링크: [한국연구원] 믿을 수 없는 그 잘난 교수들 / 고부응
( www.webzineriks.or.kr/post/믿을-수-없는-그-잘난-교수들-고부응 )
(20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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