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7

[과학사] Lindberg (2007), Ch 7 “Roman and Early Medieval Sc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David C. Lindberg (2007), 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ory to A.D. 1450, 2nd e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132-162.

  데이비드 C. 린드버그, 『서양과학의 기원들』, 이종흡 옮김 (나남, 2009). ]

  

  

  1. Greeks and Romans


갈레노스: 그리스와 로마에서 지적 활동을 전개→두 나라 사이의 지적 상호 침투를 잘 보여줌 

“그리스와 로마 사이의 정치적, 문화적, 지성적, 특별히 '과학적인 관계는 무엇이었나?" 

그리스 도시국가 →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 그리스 제국 수립 


그리스의 지성: 비옥, 보호, 후원, 정력적인

 

로마

에트루리아 마을로부터 자라남.

B.C. 7세기부터 번창하는 B.C. 5,4세기까지 언어적, 지리적 장벽은 초기 문화적 접촉에서 큰 문제가 아니었음

이태리에서 그리스어를 말하고 읽는 능력은 매우 일반적인 것

(페르메니데스, 제논, 피타고리아 학파 등)

 

로마는 그리스를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점령했지만, 예술적인 면과 지적인 면에서 로마가 그리스에 복속됨.


로마의 상위 계급에서 2개 국어 사용은 매우 일반적인 것. 

이런 상황은 키케로의 업적으로 설명된다. (시세

키케로: 로마 국민, 학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다양한 주제에 관해 라틴어 논문을 씀.

  

처음에 학자들에 대한 지원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졌음. 

→ Household 방식(가정교사..)


기본적으로 커다란 언어 장벽을 가지지 않았던 그리스와 로마였지만, 로마에서는 그리스어 강의가 라틴어보다 수준 높은 것으로 이해됨.

라틴어는 낮은 수준의 대중강연에서 적합하다고 여겨졌던 것.

로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지식을 보존하고, 주석을 달고, 교육 및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그리스 학문을 학습해 갔다. 


모든 연구 프로그램은 보존, 각주달기, 교육, 대중화, 전달을 지향하는 프로그램과 수반되었음. → 우리가 지금 21세기에도 대학과 대중매체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상 

실제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에 관심 → 약학, 논리학, 수사학 

로마의 학자들은 그리스의 영향력 아래 건축, 지질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중심으로 발전시킴.

그러나 과학이나 자연철학에는 여가시간의 오락거리 정도의 관심만...



  2. Popularizers and Encyclopedists


초기의 대중화 작가

포시도니우스(Posidonius) 

- 그리스 부모, 시리아 태생. 아테네에서 공부, 

로도스 섬의 스토아 학파 학교의 교장이 되기도 함.

- 키케로와 같은 동료, 로마를 여행하고 많은 감명을 받음. (universal scholar) 

- 역사, 지리학, 윤리 철학, 자연철학 등에 관심. →관련된 많은 저작을 남김. 

- 현재까지 전해지는 저작은 없음. 

가장 의미 있는 연구는 ‘지구의 원주길이 결정’에 관한 것.


바로(Varro) 

로마와 아테네에서 공부, 다작을 남김. 

다양한 주제의 라틴 저작

백과사전인 『학문분과를 다룬 아홉 권의 책』(Nine books of Disciplines) 남김. 

→ 로마 백과사전의 모델이자 소스가 됨. 

→ 문법, 수사학, 논리학,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학, 의학, 건축.

바로의 저술 내용은 중세 교양교육인 자유교육 과목 3학(trivium), 4과(quadrivium)의 전통으로 계승됨.

3학: 문법, 수사학, 논리학

4과: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학


키케로 대중화 운동에 헌신. 당시 철학적 논쟁거리에 대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제공. 

- 그의 세계관은 플라톤주의와 스토아 학파의 결합으로 구성됨. 

- 신, 자연, 불을 실존, 운동성, 이성의 원인이 되는 활동력으로 보았음. 

- 소우주와 대우주 사이의 평행주의를 지지함. 

- 영혼 육체의 관계처럼 신 물체의 관계를 해석. → 중세와 르네상스시기의 주요 개념이 되었고 점성술 관련 저술의 주요 주제가 됨. 

- 수리과학에는 큰 관심이 없었음. →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님.


루크레티우스: 긴 철학적 시를 지음.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On the Nature of Things)

→ 에피쿠로스 자연 철학의 방어, 창조와 멸망, 세상의 무한함에 대한 토론, 거울과 빛의 반사, 감각의 망상, 감각 지각, 영혼의 죽음, 식물과 동물의 기원, 생물학, 지질학 현상의 목적론적 설명방식을 비난함.


바로, 키케로, 루크레티우스 →로마 공화국의 후기 지성사의 개화기. 

그 외에도 비트루비우스(Vitruvius), 캘슈수(Celsus), 세네카(Seneca) 등 있음.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

: 로마 과학의 중심적인 인물. 북이탈리아 태생. 지방 귀족, 로마에서 교육 받음. 

문학에 정진, 베스파시아누스와 타이투스 황제의 보좌. 

로마 역사와 전쟁에 관한, 문법에 관한 저술, 

『박물지』(Natural History) →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탄생한 저작. 

전형적인 로마 학자가 아니었음. 로마 지식인의 교양서가 됨.


마르티아누스 카펠라

카르타고의 북 아프리카인,

‘The Marriage of Philology and Mercury' → 우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음.

(기하학, 산수, 수의 분류, 천문학)



  3. Translations



초기에는 로마와 그리스 사이에 학제적으로 접근의 문제가 없었음. 

2세기 말엽,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악화됨.

(정치적 혼란, 도시전쟁, 도시 쇠락, 경제적 재앙, 250년 경 바바리안의 공격.)

게다가 동 그리스와의 교류 감소로 학문에 큰 영향. → 4세기에 동로마 서로마 분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 

서로마는 동 그리스와의 접촉이 줄고 점차 ‘비잔틴 제국'으로 변화. 

→동/서 로마의 지적 연속성은 점차 약화됨.

 →그리스의 철학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 대표적인 두 인물, 

칼시디우스(Calcidius), 보에티우스(Boethius) 

→ 로마는 그리스 고전을 많이 보전하지 못했음 (thin and limited version)



  4. The Role of Christianity


기독교: 3세기에 로마 제국의 주요 종교가 되고 4세기에는 국교가 되었음.

로마 제국 후 기에 강력한 종교적 역할을 수행함.

기독교가 어떻게 자연 지식과 자연관에 영향을 주었는가?

린드버그는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는 기존의 관점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함.

 

교회가 반-지성적이라는 생각 → 가장 주된 편견. 

- 실제로는 서로마의 교육 지원에 앞장서고 전통적 지성을 계승함.

린드버그는 기독교에 대해 옹호적인 입장

교회의 지원은 제한적이고 선택적이긴 했지만 그것은 ‘반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5. Roman and Early Medieval Education


- 교회가 교육에 후원한 방법: 학교의 설립과 지원 

- 다양한 수준별 교육 제공 -초등 교육은 부모나 가정교사가 읽고 쓰고 계산하기를.. 

- 여성에 대한 교육은 Primary school에서 그침. 

- 라틴어 문법, 문학 → 쓰는 기술 → 넓은 범위의 문화 교육 → 수사학 → 철학자와 공부 

- 자연철학과 수리과학은 그다지 교육되지 못했음. 

- 서로마 제국이 쇠락하면서 교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침체.. 

- 몇 학교는 이교도적, 학교에서 가르치는 문학 중에 다신교적인 것이 있었음. 

→ 기독교가 다른 교육 시스템을 확립하거나 국교가 된 뒤 이교도 학교가 기독교 학교로 변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


- 수도원제도는 4세기경에 서로마에서 생겨남.

6세기경 성 베네딕트가 몽테 카씨노(Monte Cassino)에 수도원 설립, 제도와 규칙 정립.(the Benedictine Rule)

역사적 논란거리: 고전적 교육이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된 ‘정도’(degree)의 문제.

- 수도원은 정신적 계발을 중요시함. 성경이 교육의 핵심.

- 초기 중세의 과학 운동에 대한 종교의 공헌, ‘보전’, ‘전파’



  6. Two Early Medieval Natural Philosophers


- 저자는 당시 과학에 대한 종교의 역할을 굉장히 크게 보고 있는 것 같음. 

초기 중세 자연 철학자 두 명: 이시도르, 베데 (베데에 관해 알려진 게 더 많음)

 

이시도르

On the Nature of Things, Etymologies

성경공부, 신학, 전례(liturgy), 역사

기독교와 이교도 모두에 기반

지구중심설, 4원소설, 

천문학에는 기초적 지식 뿐.


베데 

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People

계시와 달력에 관한 교과서를 저술. 

8세기의 가장 뛰어난 학자 

On the Nature of Things (플리니와 이 시도르 것에 기반)


베데와 이시도르를 이 책에서 다룰 필요가 있는가?(저자의 자문) 

과학사가 기념비적인 과학 적 발견이나 생각에 관한 것이라면 이시도르와 베데는 여기서 다룰 필요가 없음(지금 그들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과학적 업적이 하나도 없으므로)

하지만 과학사의 의미를 따져보면 그들은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음.

위험하고 어려운 시기를 관통하는 연속성을 제공한다는 데서 의미.



  7. Learning and Science in the Greek East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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