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6

과학학과를 홍보하는 방법

     

2월 23일(수)와 24일(목), 이렇게 이틀에 걸쳐서 과학학과 창립 행사를 했다. 23일(수) 행사는 과학학과 구성원들끼리 하는 워크샵이었고, 24일(목) 행사는 내외빈을 모시고 하는 창립식이었다.
 
나는 창립식에서 자연과학대학 학장이 하는 축사를 듣고서야 협동과정에서 학과로 승격되었을 때 좋은 점을 알게 되었다. 자연과학대학 회의에서 협동과정은 의결권 없이 회의에 참석만 할 수 있는데 학과는 의결권을 가진다고 한다. 협동과정이 학과로 바뀌었을 때 소속명이 열세 글자에서 네 글자로 줄어드는 것 말고 무엇이 좋은지 몰랐는데 창립식 도중에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미리 알았다고 하든 뭐가 달랐겠느냐만, 그래도 이왕 알게 될 것이라면 진작 가르쳐주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학과로 바뀌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과학학과가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할지 잘 모르겠다는 대학원생들도 있었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할 때는 과학사가 무엇이고 과학철학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만도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과학학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동양과학사 선생님도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 뭐 하는 곳이냐는 사람에게 과학사가 무엇인지 실컷 설명했더니 듣던 사람이 “아, 과학철학은 중요한 거군요”라고 했다고 한다.
 
과학학이나 과학학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굳이 그런 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쪽이다. 주변 사람들이 과학학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이 과학학에 대해 안다고 해보자. 그들이 나에게 연구비를 줄 것인가, 생활비를 줄 것인가? 어차피 설명해봤자 잘 모르거나 귓등으로 들을 것이며, 설사 이해했다고 한들 나한테 별반 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과학학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에 왜 내가 전전긍긍해야 하는가?
 
물론, 후원자나 잠재적 후원자가 과학학이 물어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 경우에도 꼭 정석으로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장인이나 장모가 될 사람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고 하자. 그 때 학자적 자세로 과학학이 무엇이며 그게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면 결혼하는 데 마찰이 생길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장인이나 장모가 물었을 때 답변해야 하는 것은, 그 일이 어떤 작업인지가 아니라 그 일로 얼마를 벌 수 있느냐이다. 과학학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의 수입이 그들의 기대 수준을 넘어선다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사위라고 부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입, 재산,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이지 과학학의 정체성 같은 것이 아니다.
 
고객이 묻는 상황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을 앞둔 사람이 묻는다면 정석대로 설명하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지만, 생활을 즐겁고 활력 있게 보내고 싶은 사람이 과학학이 무엇인지 물을 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하거나 자세한 것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고객이 즐거워할 만큼만 알려주면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라투르의 책을 읽고 과학철학에 관심이 생겼다며 나에게 아르바이트를 의뢰했다고 하자. “라투르는 과학철학 아닌데요?”라고 하며 다른 전공자를 연결해주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라투르의 책을 읽고 과학철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할 정도라면 해당 고객은 뭐가 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럴 때는 “과학철학이요? 그러면 제가 해야겠네요”라고 하고 일을 맡은 다음, 과학철학을 큰 왜곡 없이 적절한 수준으로 알려주면 된다.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했다면 고객은 과학철학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애초 언급했던 라투르 같은 것은 기억도 잘 안 날 것이다. 이건 상도덕에 위반되는 일도 아니다. 분명히 고객은 과학철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고, 결국 나의 노동을 통해 과학철학에 관한 것을 일부 알게 되지 않았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학철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으냐, 안 좋으냐, 또는 지불 의사가 생기느냐, 안 생기느냐일 것이다.
 
어차피 대학에서도 의사결정권자들이 뭔가를 잘 알고 수업을 개설하는 것도 아닐 텐데, 주변 사람들이 과학학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너무 고심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과학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게 만들 수 있느냐, 어떻게 심리적 만족감을 높이느냐일 것이다. 여기에 학자적 태도는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 뱀발(1): 여기서 말하는 학자적 태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건축공학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에게 현수교 놓는 공법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뱀발(2): 그래도 과학학이 무엇인지 비-전공자들도 쉽게 감이 오게끔 설명할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은, 그런 것은 대표성이 있는 선생님들이 고민할 일이지 나 같은 잔챙이가 고민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선생님들이 방송국 PD를 꼬셔오기만 하면, 맞는 내용이든 틀린 내용이든 작가들을 갈아넣어서 일반인들이 호감을 가지게끔 만들어줄 것이다.
  
 
(202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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