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7

시트콤 <지칭 이론> - 밀고 편

   

혹시라도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을 따라 해서 한국에서 <지칭 이론>이라는 시트콤을 만든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그 시트콤의 작가가 된다면, 에피소드 중에 <밀고>라는 편을 넣을 것이다. 지도교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원생이 그 사실을 들킨 뒤 밀고자를 추적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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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원생 연구실
  
- 한식: “이번에 ◯◯구청에서 강의한다면서요?”
- 덕용: “아, 그거 뭐, 강의라고까지 할 건 없고 어떻게 소개가 들어와서 아르바이트 하게 된 거예요.”
- 경태: “강의 준비는 많이 하셨어요?”
- 덕용: “예전에 다른 데서 해봐서 별로 준비할 건 없어요.”
- 한식: “예행연습 같은 것도 안 해요?”
- 덕용: “뭐, 그냥 하면 돼요.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어요.”
- 한식: “뭔데요?”
- 덕용: “내가 아르바이트 하는 내용이 신문에 났어요. 구청에서 홍보 기사를 냈나 봐요. 공무원들이 일을 열심히 할 줄 몰랐는데, 큰일이네. 지도교수님 알면 안 되는데.”
- 원호: “지도교수님이 그런 거 하지 말래요?”
- 덕용: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지금 까불고 다닐 처지가 아니잖아요. 공부를 딱히 잘 하는 것도 아니고.”
- 원호: “지도교수님도 괜찮다고 할 걸요? 선배가 이상한 거 하지 않을 텐데.”
- 덕용: “그래도 좀 그렇죠. 다른 선생님 제자 중에는 이번에 해외 학술지에 논문 실은 사람도 있는데 우리 선생님 제자는 아르바이트 하고 다닌다고 그러면 좀 안 그렇잖아요. 대학원생들 중에 막 까불고 다니는 애들 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책 내고 연구도 못하는 주제에 소개하라고 하면 꼭 연구자라고 소개하고 글도 못 쓰는데 신문 칼럼 같은 거나 쓰고, 그런 애들 보면 아름답지 않더라고. 내가 소주 한 병 먹고 써도 걔네들보다 훨씬 잘 써요. 그런데 왜 안 합니까. 공부 못하는 주제에 까불고 돌아다니면 지도교수님께 누가 되고 대학원에 누가 될까봐 그러는 거죠. 하여간 지도교수님이 알면 안 돼요. 안 돼 안 돼. 지도교수가 걱정해. 안 돼.”
  
  
#2 택시 안
  
- 교수: “덕용이”
- 덕용: “네, 선생님.”
- 교수: “이번에 ◯◯구청에서 강의한다면서?”
- 덕용: “네? 어...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 교수: “아,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 덕용: “못 하게 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씀 안 드린 것은 아닌데, 그런 거 한다는 걸 아시면 걱정하실까봐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교수: “걱정은 뭐. 자기일 잘 하면서 하면 되지. 전공자들이 일반인들에게 자기 전공 알리는 것도 좋은 일이에요. 그런 거 하면 잘 할 건 같은데 뭐.”
- 덕용: “네, 수강생들은 좋아합니다만... 그런데 제가 그 일 하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구청에서 현수막 붙인 것 같지는 않던데...”
- 교수: “그냥 뭐.. 그냥 알게 됐지.”
- 덕용: “혹시 검색해서 신문 보고 알게 되신 건가요? 구청에서 공무원들이 일을 열심히 할 줄은 몰랐어요.”
- 교수: “구청에서 그런 행사를 하면 공무원들이 당연히 알리는 게 맞지.”
- 덕용: “그러면 신문을 보신 건가요? 저하고 이름이 같은 연예인이 있어서 이름만 검색해서는 그게 잘 안 나올 텐데.”
- 교수: “그냥 뭐.. 어떻게 알게 됐어.”
  
‘선생님은 신문을 보고 안 게 아니다. 우리 중에 밀고자가 있다.’
  
  
#3 대학원생 연구실
  
“한식씨, 나 이번에 도봉구청에서 아르바이트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지난 번에 봤잖아. 우리 중에 밀고자가 있어요.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요.”
  
“경태씨, 이번에 서초구청에서 아르바이트가 들어왔는데...”
  
“원호씨, 강남구청에서...”
  
“병기형, 혹시라도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요. 이번에 양천구청에서...”
  
  
# 4 교수 연구실
  
- 교수: “덕용이 이번에 또 어디서 뭐 한다면서?”
- 덕용: “아, 들으셨습니까.”
- 교수: “어디였다던가... 어...”
  
덕용은 지도교수의 입술을 본다. 지도교수는 입술이 가운데로 모은다. ‘도봉구청을 말하려는 건가. 한식이 그렇게 안 봤는데. 이런 씨...’ 입술이 미묘하게 움직이더니 이렇게 말한다.
  
- 교수: “음... 음... 아, 양천구청? 맞지?”
  
‘잡았다!’
  
  
- 끝 -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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