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6

[언어철학] Ayer (1946), Ch 1 “The Elimination of Metaphysics” 요약 정리 (미완성)

   
[ Alfred J. Ayer (1946), Language, Truth and Logic (Penguin Books), 2nd ed., pp. 45-61.
알프레드 J. 에이어, 『언어 논리 진리』, 송하석 옮김 (나남, 2010). 제1장. 「형이상학의 제거」 ]
   
   
■ 형이상학에 대한 에이어의 비판 [pp. 45-46, 53-54쪽]
- 철학자들의 전통적인 논의는 대부분 무익하고 확증되지 않았음.
• 이러한 논의를 끝내려면 철학적 탐구의 목적과 방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밝혀야 함.
- 형이상학적 논제는 철학이 과학과 상식의 세계를 초월한 실재(reality)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고 함.
• 형이상학적 진술들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식적 욕망이 아니라 논리적 실수를 범했기 때문에 생김.
- 형이상학자를 공격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형이상학자들이 제시하는 명제가 어떤 전제에서 연역되는지 질문하는 것.
- 가능한 반박
• 형이상학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감각적 증거에 근거하지 않음.
• 감각 경험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을 지적 직관을 통해 알 수 있음.
- 에이어의 처방
• 형이상학을 존재하게 된 방식을 비판하여 초월적 형이상학의 체계를 전복할 수 없음.
•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실제 진술들(actual statements)의 본질을 비판해야 함.
• 모든 가능한 감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재”를 지시하는 진술은 아무런 문자적 의미(literal significance)도 가질 수 없음.
• 형이상학적 실재를 기술하는 것은 무의미를 만들어낼 뿐.

■ 칸트에 대한 기존의 비판 [pp. 46-48, 55-56쪽]
- 칸트는 초월적 형이상학을 비판했지만 또 다른 형이상학적 근거 위에서 이를 수행함.
• 인간 오성이란 가능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고, 물자체를 다루려고 시도할 때 모순에 빠지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
• 초월적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을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
• 우리의 정신은 현상적 세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
- 칸트에 대한 기존의 비판
• 우리가 감각 경험의 한계 내에 있는 것만을 알 수 있다면 한계를 넘어서 실재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 그 한계를 넘어갈 수 없다면 인간 오성이 탐구할 수 없는 한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 에이어는 칸트에 대한 기존의 반론이 자신의 논제에 반론이 되지 않는다고 함.
• 가능한 감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무익하다는 것은 심리학적 가설(인간 마음의 현실적 구성)이 아니라 언어의 문자적 의미를 결정하는 규칙에서 연역됨.
• 형이상학자들의 문제는 탐구할 수 없는 영역에 오성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자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
• 한 문장이 사실에 관한 진짜 명제를 표현하는지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기준을 정식화하기만 하면 됨.

■ 검증가능성 [pp. 48-50, 56-59쪽]
- 사실에 관한 분명한 진술이 진짜인지 아닌지 검토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의 기준. 
• 한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 사실적으로(factually) 유의미하다 iff 그 사람이 그 문장이 표현하고자 하는 명제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지 안다.
• 명제를 어떻게 검증할지 아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일정 조건에서 어떤 관찰이 그 명제를 참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거짓으로 거부하게 하는지를 안다는 것.
- 실천적 검증가능성(practical verifiability)과 원리상의 검증가능성(verifiability in principle)의 구분
• “달의 반대 편 표면에 산이 있다”는 명제는 현실적 관찰로는 참/거짓을 결정할 수 없지만 원리상 검증가능하므로 유의미한 명제
• “절대자의 진화는 진보에 관계하지만, 그 자체는 진화하거나 진보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원리상 검증가능하지 않음.
- ‘검증가능성’의 ‘강한’(strong) 의미와 ‘약한’(weak) 의미
• 어떤 명제가 강한 의미로 검증가능하다 iff 그 명제의 참이 경험에 의하여 확실하게 결정된다.
• 어떤 명제가 약한 의미로 검증가능하다 iff 그 명제의 참이 경험에 의하여 개연적으로 결정된다.

■ 검증가능성에 대한 다른 의견과 에이어의 비판 [pp. 50-52, 59-61쪽]
- 의견(1): 어떤 실증주의자들은 확정적 검증가능성(conclusive verifiability)을 주장함.
- 에이어: 확정적 검증가능성을 채택하면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게 됨.
• 예) “비소는 유독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등의 일반 명제
• 일반 명제는 유한한 관찰에 의하여 그 명제들의 참이 확실성을 가질 수 없음.
• 확정적 검증가능성을 채택하면 법칙에 관한 일반 명제를 형이상학의 진술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게 됨.
- 의견(2): 어떤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일반 명제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무의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의미한 것이라고 함.
- 에이어: “중요한”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도피처에 불과함. 역설적인 견해다.
• 이러한 문제는 먼 과거에 관한 명제에도 해당됨.
• 역사적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 진술의 참은 개연적인 것임.
- 의견(3): 한 문장이 경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반박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이 경우에만 그 문장이 사실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보자는 주장.
- 에이어: 어떤 가설을 참이라고 결정할 수 없지만 명백하게 반증하는 결정적인 경우가 있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임.
• 어떤 관찰을 주어진 가설을 거짓으로 만드는 증거로 간주할 때 우리는 어떤 조건이 전제하므로, 가설은 확정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것처럼 결정적으로 반증될 수도 없다.
- 에이어의 결론: 더 약한 의미의 검증가능성.
• 사실에 관한 임의의 진술에 대해서 물을 때
“그 명제를 논리적으로 확실한 참이나 거짓으로 만들어주는 관찰이 있는가?”(X)
“그 명제의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데 관련이 있는 관찰이 있는가?”(O)

■ 검증 원리 [pp. 52-53, 61-62쪽]
- 경험 명제(experiential proposition): 현실적 관찰이든 가능적 관찰이든 하나의 관찰을 보고하는 명제
• 어떤 명제 P가 하나의 경험 명제나 유한한 수의 경험 명제와 동치는 아니고, 그 명제와 다른 전제들을 결합했을 때 어떤 경험 명제가 연역될 수 있지만 다른 전제들만으로는 그 경험 명제가 연연될 수 없을 때, 그 명제 P는 진정한 사실 명제(a genuine factual proposition)임.
* 주석(8): 이는 너무 단순한 진술이므로 서론 16쪽의 정식화를 볼 것.
- 이 기준은 충분히 관대하여, 일반 명제나 과거에 관한 명제의 의미를 부인하지 않음.

■ 검증 원리 기준이 배제하는 진술의 예 [pp. 53-55, 62-64쪽]
- 예(1): 감각 경험의 세계는 모두 비실재적(unreal)이라는 주장.
• 감각이 때때로 우리를 속이기도 함.
• 그러나 감각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실수를 알려주는 것은 또 다른 감각 경험.
• 감각에 기초한 판단을 받아들이거나 반박하기 위해서 또 다시 감각에 의존함.
• 그러므로, 감각적 판단이 때로 실수라고 밝혀진다는 사실은 감각경험의 세계가 비-실재적임을 보여주지 않음.
- 예(2):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substance)의 수에 관한 논쟁
• 일원론자든 다원론자든 모두 논쟁의 해결과 관련되는 경험적 상황을 생각할 수 없음.
- 예(3): 실재론자와 관념론자 사이의 논쟁
• “실재적”이라는 말이 “관념적”이라는 말과 대립되는 의미에서 그것이 실재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허구적임.

■ 형이상학의 진술은 무의미함 [pp. 55-56, 64-65쪽]
- 검증 원리가 주장하는 것
• 사실적 내용을 가지는 명제는 모두 경험적 가설.
• 경험적 가설의 기능은 경험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하는 어떤 규칙을 제공하는 것.
• 모든 경험적 가설은 현실 경험이나 가능한 경험과 관련되어야 함.
• 따라서, 아무 경험과도 관련되지 않는 진술은 경험적 가설이 아니고 사실에 관한 내용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 형이상학자의 진술은 무의미함.
• 이는 형이상학자들의 언명(utterance)이 사실적 내용을 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험적 명제(a priori proposition)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도출됨.
• 형이상학적 문장은 진짜 명제를 표현하려고 하지만, 항진명제(tautology)도 아니고 경험적 가설도 표현하지 않음.

■ 형이상학적 주장이 만들어지는 과정 [pp. 56-59, 65-68쪽]
- 형이상학적 주장이 만들어지는 과정
• 우리는 사물 자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나 어구를 도입하지 않고 사물에 관한 것을 언급할 수 없음.
• 그 결과 모든 이름에 단 하나의 실재적 존재자가 대응한다는 근본 가정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사물 자체와 감각될 수 있는 사물의 성질을 논리적으로 구별해야 한다고 가정함.
• 사물 자체를 가리키기 위해 “실체”라는 용어를 사용함.
• 문법에 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형이상학이 생겨남.
- 예: ‘존재’(Being)라는 형이상학적 개념
• 존재에 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과 속성에 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의 문법 구조가 동일함.
• 가능한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대답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려는 경향이 생김.
• 예) “순교자들이 있다”(Martyrs exist)와 “순교자들이 고통 받는다”(Martyrs suffer)가 문법적으로 동일해 보인다는 사실은 그 문장들의 논리적 형태가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함.
- 그러나 칸트가 지적했듯, 존재는 성질(attribute)이 아님.
• 존재가 성질이라면, 모든 긍정존재명제는 항진명제가 되고 모든 부정존재명제는 자기모순이 됨.
• 비-존재적 존재자가 실재한다는 가정은 문장의 문법적 주어가 될 수 있는 모든 단어나 어구는 어딘가에 그에 대응하는 실재적 존재자가 있다는 가정에서 생겨남.
• 예) “유니콘은 가상적이다”와 “개는 충직하다”는 문법적으로 같은 구조
• 예) 무(Nothing)에 대한 하이데거식의 진술
-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 중 많은 것이 형이상학이며 허구적이라는 견해는 철학자들의 심리에 관한 믿기 힘든 가정을 포함하는 것이 아님.

■ [pp. 59-61, 69-71쪽]
- 형이상학자를 일종의 시인이라고 하는 견해
• 형이상학의 진술은 문자적 의미를 가지지 않으므로 참/거짓에 관한 기준과 부합되지 않음.
• 그러한 진술들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일으키기 위해 사용될 수 있음.
• 그 결과 윤리적 기준이나 미학적 기준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음.
• 그러므로 도덕적 영감의 수단이나 예술 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짐.
- 에이어: 철학에서 추방당하는 형이상학자들은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 시인이 만드는 문장은 대부분 문자적 의미를 가짐.
• 예술 작품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명제가 문자적으로 거짓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빠지지 않음.
• 형이상학자들은 무의미를 의도하지 않음.
• 형이상학자들은 문법에 속거나 추론상의 잘못 때문에 감각세계는 비-실재적이라는 견해에 빠져 무의미한 문장을 만듦.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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