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A라는 여성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저도 잘 되겠죠, 잘 될 겁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 나는 내가 잘 될 것이며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물었다. “어떻게 잘 될 건데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기 마련인데, 그 사람은 나한테 어떻게 잘 될 거냐고 물었다. 막상 답하려니 막막했다. ‘그러게, 나는 어떻게 잘 되지?’ 그 사람은 매우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그 사람이 하던 일이 잘 되어 만난 자리라 분위기도 좋았다. 분명히 분위기가 좋았는데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은 정말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잘 될 것인지 궁금해 한 것 같았다.
나는 대답했다. “그냥 잘 될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잘 될 건데요?” 또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대강 넘기려고 했는데 또 물었다. ‘그러게, 나는 어떻게 잘 되지?’ 나는 내가 잘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걸 정당화할 만한 요소가 없다. 대강 생각한 건 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면 저 사람이 나를 정말 미친놈으로 볼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투자 설명서를 들이밀면서 투자금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잘 될지가 왜 궁금할까?
“그러니까요, 그냥 잘 될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잘 될 건데요?” 또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나를 30년 간 키운 어머니도 내가 어떻게 잘 될지 별로 안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저 사람은 내가 어떻게 잘 될지 왜 궁금해할까? 어쨌거나 대답을 하기는 해야 했다. “사실 저는 망할 놈이에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잘 될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잘 될 건데요?” 또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저 사람이 오늘 왜 이러지?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그런데 그 사람은 멀쩡하게 연애를 잘 하고 있었으니 그것도 아니다. 어쨌든 나는 뭔가 대답을 하긴 해야 했다.
“예수님이 저를 도와주실 겁니다.” 이 정도 대답을 하면 웃고 넘어가겠지 싶었는데, 그 사람은 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〇〇씨는 정말 기독교를 믿으세요?” 나는 제대로 말을 못했다.(예수님, 미안.) 어쨌거나 나는 내가 왜 잘 될지 대답하지 못했다.
몇 년 전의 일이 떠오른 건, 최근에 B라는 사람이 애인과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B와 B의 애인은 성격이나 취향도 비슷하고 싸우지도 않고 사이 틀어질 일도 없었는데 순수하게 경제적인 문제로 헤어졌다고 한다. 헤어진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슬프다고 하길래, 나는 슬픈 이야기 하면 못 놀리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
멀쩡히 잘 사귀던 사람들도 경제적 이유로 헤어지는 마당이라, 경제적으로 안 멀쩡한 나 같은 사람은 상황이 더욱 암울하다. 나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도 아니고 30대 초반의 대학원생이다. 지금까지 한 짓을 보아서는 내가 봐도 내가 연구자로 유망할지 의심스럽다. 이런 와중에, 나와 미래를 약속하거나 약속할만한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잘 될지를 물으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나는 모르겠다.
어쨌든 미래를 약속하거나 약속할 가능성이 높아서 나한테 어떻게 잘 될 거냐고 묻는 사람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혹시라도, 저 인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나 궁금해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예수님이 저를 도와주실 겁니다, 아멘”이라고 답해야겠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상의 답변인 것 같다.
(201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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