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8

보드카는 마음이 묻어나는 술

철학 전공자와 맥주를 마셨다. 메뉴판에서 보드카가 눈에 들어왔다. 보드카는 증류할 때 숯과 모래가 들어간 증류탑을 이용하는데 이러한 증류 과정에서 맛과 향이 제거된다. 예전에 <시사인>에서 읽었던 칼럼이 떠올랐다. “〇〇형, 보드카는 향과 맛이 없잖아요. 그래서 마실 때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진대요.”


대륙철학 전공자였으면 내 말에 맞장구를 쳤을지도 모르지만 분석철학 전공자인 그 형님은 내 말을 의심했다. “과학철학 한다는 놈이 그게 무슨 소리냐? 그게 말이 되나?”, “아, 저는 보드카를 잘 모르는데 여행 작가인가 누군가가 그렇다던데요.”


그 형님은 보드카를 두 잔 시켰고 각자 한 잔씩 마셨다. “마음이 느껴지냐?” 나는 보드카를 잘 모르지만 독특한 숯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무슨 숯인지는 모르겠지만 숯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약간 텁텁하면서도 화한 맛이 나는데... 마음까지는 모르겠어요.”


그 형님은 보드카를 한 잔 더 시켰다. “이번에는 어떠냐?”, “어... 아까랑 이거 비슷한 건가... 아닌가... 아,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 잔 더 먹어야 하나?”


그날 나는 마음을 읽기 전에 정신을 잃을 뻔 했다.



* 링크: [시사인] 보드카는 맛없음의 미학을 간직한 술 / 탁재형

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36 )



(201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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