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이게 왜 페미니즘 영화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두고 흑인 인권 영화라고 하는 사람을 아직 못 보았는데, 왜 <매드맥스4>를 두고 페미니즘 영화네 어떠네 하는지 모르겠다.
<매드 맥스4>에 페미니즘의 요소가 들어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주인공인 퓨리오사가 주체적인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인 퓨리오사가 임모탈의 부인들과 함께 시타델을 탈출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야” 같은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고작 이것을 가지고 <매드맥스4>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한다면, 고전 소설 <박씨전>은 페미니즘 소설이고 <추노>는 인권 드라마다.
영화의 부차적인 요소를 마저 보자. 퓨리오사 일행이 임모탄에게서 도망칠 때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맥스이고 시타델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도 맥스다. 할머니들이 씨앗을 모은 것을 두고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원시 부족에서 씨 관리하고 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여성이다. 영화 곳곳에서 원시 부족이나 고대 사회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다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내셔널 지오그래피나 히스토리 채널에서 본 것일 가능성이 높다. 대지의 여신으로서의 여성의 은유는 고대 중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지에 있었다. 왜 <매드 맥스4>는 페미니즘 영화인가?
<매드맥스4>를 두고 페미니즘 영화라고 호들갑 떨 이유가 없다. 물론,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것 같지는 하다. “와, 액션 장면 정말 훌륭하다!” 하는 말만 가지고는 칼럼 분량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말은 해야겠는데 마침 미국 네티즌들이 페미니즘 논쟁을 벌인다. 미국 네티즌이 한국 네티즌보다 영어는 잘 하겠지만 더 나은 판단을 할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쨌든 미국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이 죄다 꺼뻑 죽으니까 미국 같은 소리를 하고, 여기에 쓸데없고 상관없는 말 몇 마디를 덧붙이면 글 한 편 분량은 금방 나올 것이다. 안목 없는 사람들은 글에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만 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좋아하니까 ‘페미니즘’ 같은 단어를 글에서 몇 번 써주는 것도 좋겠다.
영화 <명량>이 흥행했을 때도 자칭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들은 <명량> 흥행의 사회적 의미를 이야기했다. 왜 영화 이야기는 안 하고 사회적 의미 같은 소리나 했을까? 영화 자체를 가지고는 도저히 좋은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가 개떡 같지만 그래도 돈을 퍼부으니 그래픽은 좋더라” 하는 말을 도저히 대놓고 할 수 없으니 “한국 사회가 이순신의 리더십을 요구한다”고 우겼던 것이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이순신의 지도력은 한국 사회에 전혀 필요하지 않다. <명량>에서 이순신은 구성원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감수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감수한다. 부하들에게 “거북선이 없다고 걱정하지 마. 거북선이나 판옥선이나 선체는 똑같잖아. 그냥 들이받으면 돼” 하고 말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온갖 쇼를 다 한다. 자동차 성능시험도 아니고 해상에서 별별 희한한 실험(가령, 화포를 이용한 선박 쓰리쿠션)을 한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이순신은 의사소통 능력이 없는 지도자인데, 그런 지도력이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명량>은 열두 척으로 330척을 어떻게 이겼는지 도저히 이야기를 못 만들어내니까 이순신을 그냥 미친놈으로 만들었다.
영화가 그 모양이었는데도 <명량>이 크게 흥행한 것은 이순신이 나와서 일본 군선을 때려 부수었기 때문이고 딱 그뿐이다. 내가 알기로, 이순신을 다룬 영화, 드라마, 소설 중에 망한 것은 영화 <천군> 밖에 없다. 최소한의 개연성만 있고 이순신이 영웅적인 면모만 보여주면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알아서 감동 받게 되어있다. 어디서 구린 것을 보고도 구린 줄도 모르고 찔찔 짜면서 돈을 갖다바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흥행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만 하면 된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발심리가 있다느니, 인간적인 고뇌가 있다느니, 멸사봉공의 자세가 어떠하니 등등,
영화 <천군>이 망한 건 주인공이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찌질이로 지내는 이순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웅을 보고 싶어 하고 이순신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영웅이라서 흥행하는 것인데 이순신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린다면서 그러고 있으니 당연히 망할 수밖에 없다. <불멸의 이순신>도 화포로 일본 배를 때려 부수기 전까지는 시청률이 바닥을 쳤다. <명량> 흥행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보다 새우깡이 30년 넘게 잘 팔리는 것의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는 작업이겠다.
<매드맥스4>는 <명량>과 달리 정상적인 영화이니 영화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많을 것 같은데 페미니즘 영화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 개도 평론하고 소도 칼럼 쓴다. 운전면허처럼 평론가 1종 보통면허, 칼럼니스트 1종 대형면허 같은 것을 발급해야 하지 않나 싶다.
(2015.06.17.)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