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2

‘우리 안의 〇〇’이라는 구호

욕 먹을 짓을 하면 욕 먹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 안의 ◯◯’ 같은 소리나 하면서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그러는가? 그들이 그렇게 성숙하고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어서 그런가?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른 것을 보고 그렇게 양심에 찔려죽겠으면 ‘내 안의 ◯◯’이라고 하면 된다. ‘우리 안의 ◯◯’이라니 다른 사람 안에 ◯◯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는가? 들여다보기라도 했는가?

‘우리 안의 ◯◯’이라면서 설레발 치고 다니면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비난이 희석된다. 특정 개인들의 잘못을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떠넘기면서 너도 나쁘고 나도 나쁘고 우리가 모두 나쁘니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 하겠느냐는 식으로 귀결된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을 두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한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사람들은 ‘우리 안의 ◯◯’ 같은 소리나 하면서 찔찔 짜는가? 왜 시키지도 않은 유사-간증을 하며 염병하는가? 남들에게 인격자로 보이고자 해서 그러는 것이라면 그런 찡찡은 위선자들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정말로 인격자여서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보느라 그러는 것이라면, 애초에 ◯◯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안에 ◯◯ 같은 것이 있는가 두려워하여 그러는 것이므로 굳이 공개적으로 그런 찡찡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염병하는 사이에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은 비난을 안 받게 되거나 덜 받게 된다.

대표적인 구호가 “우리 안의 일베”다. 이 구호는 어떠한 일베충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런 구호 때문에 반성할 정도라면 애초에 일베충 같은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반성하고 싶으면 “우리 안의 일베”라고 할 게 아니라 “내 안의 일베”라고 하면 한다. 차라리 자신의 일베짓을 공개 반성하는 게 낫다. 특정 지역 사람들을 차별했다든지, 특정 인종을 비하했다든지, 사회적 약자를 모욕하는 것을 즐겼다든지, 그런 행위들을 고백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면 된다. 그런데 막상 그러는 사람도 없다. “우리 안의 일베”라고 하면서도 그 “우리” 안에서 자기는 쏙 빠진다.

한때 청년 논객으로 불리던 한◯◯, 박◯◯이 애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의혹이 나오니까, 이제는 “우리 안의 한◯◯”, “우리 안의 박◯◯”라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반성은 혼자서 하는 것인데 왜 다른 사람에게 반성하라고 하는가? 자기가 애인을 때렸으면 우리 안에 ◯◯이 있다고 하지 말고 자기가 그런 놈이라고 하면 된다. 왜 괜히 “우리”라는 말을 쓰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까지 끌고 들어가는가? 나는 애인을 때린 적이 없다.

(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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