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3

글 못 쓰는 문과생의 세 가지 유형



페이스북이든 블로그든 건너 건너로 몇몇 대학교의 문과생들이 써놓은 글을 보게 된다. 이상한 글이 너무 많다. 내가 본 사례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특수한 사례라고 하기에는 그런 글을 너무 많이 봤다. 학교에서 방치한 문과생은 관리받은 이과생보다 글을 못 쓰는 것 같다.

이과생이 문과생보다 글을 못 쓴다는 선입견이 널리 퍼진 것 같은데, 학부 글쓰기 수업에서 조교 일을 하며 실제로 학생들이 글 쓰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관리받은 이과생은 유려한 글은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글을 쓰고, 가끔은 정말 유려한 글을 쓴다. 반면, 방치된 문과생들은 정상적인 글을 못 쓴다. 어디서 배웠는지 글에다 희한한 짓을 해서 읽기 힘들게 만든다. 글이 다루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 읽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별 내용도 없는데 이상한 말을 덕지덕지 덧붙여서 읽기 힘들다. 읽다 보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상한 글을 즐겨 쓰는 사람들 중에는, 가독성이 좋은 글을 중학생이나 읽는 글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중학생도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라는 건 대학생 수준의 내용을 중학생이 읽을 정도로 쉽게 쓰라는 말이지, 내용은 중학생 수준인데 하도 비틀어놔서 대학생의 추론 능력을 요구하는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을 써놓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글을 여러 번 읽으며 음미하기를 바라는 건 무슨 심보인가?

이상한 글을 쓰는 문과생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유형은 ‘신조어 만들기 형’이다. 헤겔이나 하이데거도 아니면서 자기 식대로 용어를 막 만든다. 이들은 자기 글에서 그러한 용어가 무슨 의미인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서 새로운 말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어떻게든 독특해 보이려고 새로운 말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를 설명하면 그 용어가 불필요한 수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상한 말이나 만들며 즐거워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더라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남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싶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용어를 설명하는 대신 그러한 용어를 하나 더 만들어서 설명을 피하려고 한다.

두 번째 유형은 ‘막 갖다 붙이기 형’이다. 아무 관련도 없는 개념을 글에다 막 갖다 붙인다. 가령, 사는 게 덧없다는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해보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는 게 덧없음을 느낀 계기가 되는 일화를 소개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기술하거나, 사는 게 덧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함축이 있는지 등을 풀어낼 것이다. 방치된 문과생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연관이 있든 없는 다 갖다 붙인다. 내가 본 글 중에는, 사는 것이 덧없다면서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파르메니데스로 시작해서 비트겐슈타인과 노자와 용수로 이어지는 글도 있었다. 파르메니데스와 비트겐슈타인과 노자와 용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없다. 사는 것이 덧없다는 문과생의 글은 글이라기보다는 파편적인 지식의 나열에 가깝다. 그런 글을 통해 사는 것이 덧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지만, 고등교육이 얼마나 덧없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형’이다. 정말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쓴다. 사진에도 구도가 있고 영상에도 편집이 있는데, 이들은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쓴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경우는 술에 취했거나 프로포폴을 맞았을 때뿐인데, 그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생각나는 대로 문자로 옮기고 고치지도 않는다. 내가 실제로 본 글 중에는 자신의 의식을 분 단위로 기록한 글도 있었다.

내가 학부 때 관찰한 바로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는 어설프지만 정상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과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침을 뱉고 나가겠지만, 판단 능력이 그저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며 조금씩 망가진다. 그리고 후배가 들어오면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한테 전수한다. 신입생 때보다 졸업할 때쯤에 오히려 글을 못 쓰는 무리가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세 가지 유형에 들어가는 사람 중에 기자가 되겠네, 평론가가 되겠네, 칼럼니스트가 되겠네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애초부터 글을 쓸 능력도 없고 글을 볼 능력도 없는 데다 주변 사람들도 죄다 비슷하니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런 사람들의 글을 볼 때마다, 그들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으로서, 동생을 대하는 형의 마음으로 헛꿈 깨고 빨리 기술을 배우라고 말하고는 싶으나, 따지고 보면 그들이 그렇게까지 헛꿈을 꾸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기자나 평론가나 칼럼니스트 중에 방치된 문과생만큼이나 글을 못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실현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도 아닌 것 같다.

(2015.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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