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4

초년 성공은 왜 위험한가 - 청년 진보논객들의 사례

인생에 세 가지 위기가 있다고 한다. 초년 성공, 중년 상처, 말년 빈곤이 그것이다. 중년에 부인을 잃고 말년에 가난한 것이 위기인 것은 알겠는데 초년에 성공하는 것은 왜 위기인가. 몇몇 청년 진보논객들의 사례는 초년 성공이 왜 위기가 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내 기억으로 10년 전 그들은 재기 있는 청년이었다. 몇몇 언론에서도 이들에 주목했고 진중권 같은 사람들이 그들과 같이 놀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젊은 나이에 불멸의 업적을 쌓거나 오래 지속되는 성과를 남겨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다. 20대에 칼텍 교수가 된 폴링 같은 사람이나 학사학위까지만 받고 (대학원을 건너뛰고) 대학 교수가 된 크립키 같은 사람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청년 진보논객들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또래보다 조금 나은 글을 썼을 뿐이다.

폴링이나 크립키 같은 사람들에게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이 있다. 청년 진보논객에게는 그러한 업적이 없다. 그들은 자기 또래보다 조금 나을 뿐이니 자기를 다듬으며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그들을 칭찬하니 필요한 것을 더 연마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소진해버린다. 똘똘했던 청년들은 그렇게 성장이 멈추고 평범한 아저씨가 된다. 천재가 일탈하면 천재성의 발현으로 미화될 수도 있지만, 평범한 아저씨가 일탈을 하면 그냥 개저씨가 될 뿐이다.

데이트 폭력 논란에 휘말린 논객 ㅎ는 거의 끝난 것으로 보인다. 논객 ㅎ의 재주가 아까우니 새 사람 되어서 빨리 돌아오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내가 대학원에서 사람들을 만나본 바로는,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만 ㅎ를 대체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1년에 몇백명 이상은 쏟아지는 것 같다. ㅎ에게 대체 불가능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 논객 판에 사람이 적어서 대체가 안 되는 것뿐이다.

논객 ㄴ가 쓴 글에 대한 악평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가 경향신문에 쓴 <페미니즘을 위하여>라는 글을 보니 사람들이 왜 그런 악평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이 글에서 ㄴ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페미니즘‘들’이 필요하다. 더 많은 여성들이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그 다양한 의견들의 충돌과 갈등과 화해 속에서 ‘진정한 페미니즘’의 모습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리도 안 하고 애를 낳아본 적도 없는 주제에 여자들에게 페미니즘이 뭔지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은 발에 차이도록 넘쳐난다. 그런 이들이 객석에서 떠들고 있는 한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합창곡은 울려퍼질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페미니즘’을 위해 남자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의 뜻을 표하는 것뿐이다. 모든 페미니즘은 진짜다. ‘진정한 페미니즘’을 위해, 묵묵히 연대하자.

여자들이 ‘진정한 페미니즘’의 모습을 그리는 동안 남자들은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를 표하며 가만히 있자고 하는, 이상한 글이다. 학부 때 페미니즘 세미나 같은 데에서 1, 2학년 학생들이 수줍게 “남성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할 수 없는데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것은 귀엽기라도 하지, 30대 석사 학위 소지자가 종합일간지에 이런 글을 쓰는 건 귀엽지도 않다.

아마 ㄴ이 19세기 영국에 태어났다면 이렇게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방직기에 실 한 번 안 꿰어보고 아동 노동도 해본 적 없는 주제에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가 뭔지 가르치려 드는 자본가들은 발에 차이도록 넘쳐난다. [...] ‘진정한 공산주의’를 위해 자본가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전폭적인 지지와 동의의 뜻을 표하는 것뿐이다.” 그런 글을 읽고 엥겔스는 시무룩했으려나.

10여 년 전 청년 논객이라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글 못 쓰는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다른 논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재능 있는 청년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겠으나, 언론이나 주변의 소모적인 관심은 그들의 성장에 오히려 독이 된 것은 아닐까 싶다.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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