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것을 글로 쓸 때 문자의 시각적인 정보 처리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글을 소리내어 읽지 않고 눈으로만 읽는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쉽고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눈으로 글을 읽을 때 방금 읽은 것이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려고 다시 읽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방금 읽은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 헷갈려면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내용을 파악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늘어난다.
한글 맞춤법 규정을 고려하면 사이시옷을 왜 써야 하는지는 대강 알겠는데, 어떤 경우는 굳이 맞춤법 규정을 지켜야 하나 싶을 정도로 보기에 썩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1) 최솟값
(2) 최소값
중 맞춤법에 맞는 것은 (1)인데,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최소값’으로 쓰면 ‘최소+값’인 것이 쉽게 보이는데 ‘최솟값’으로 이게 뻔히 ‘최소+값’인 것을 알면서도 ‘최소+ㅅ+값’으로 눈에 보여 자꾸 신경 쓰인다. ‘최’와 ‘값’ 사이에 낀 ‘솟’이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린다.
구어에 가깝게 쓰느라 축약된 표현을 쓰는 것도 시각적 정보처리 속도를 늦춘다. ‘-인데’를 실제 말하는 대로 ‘-ㄴ데’로 줄여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쓰면 글을 읽을 때 내용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말할 때는 ‘-ㄴ데’라고 하더라도 글로 쓸 때는 ‘-인데’라고 풀어쓰는 것이 더 낫다.
(3) “나 김문순데.”
(4) “나 김문수인데.”
(3)의 경우, 방금 읽은 것이 ‘순대’인지 ‘순데’인지 구분하기 위해 다시 읽거나 읽는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5) “나 도지산데.”
(6) “나 도지사인데.”
(5)의 경우도 화자가 도지(코인)를 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화자 자신이 어떤 광역자치단체장이라고 밝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해당 부분을 다시 읽거나 읽는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7) “형수님, 저 흥분데요.”
(8) “형수님, 저 흥부인데요.”
(7)의 경우, 흥부가 흥분했을 경우 “흥분돼요”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에 ‘흥분데요’를 보아도 흥부가 흥분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으나, 방금 읽은 것이 ‘흥분데요’인지 ‘흥분돼요’인지 구분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다시 읽거나 읽는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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