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6

전원주택 사기꾼



전원주택 진입로 근처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입주민 아주머니가 나에게 인사하며 커피 한 잔 사주겠다고 했다. 예전부터 몇 번 인사하고 대화한 적이 있는 분이라 그 아주머니를 따라 카페로 갔다. 그 아주머니가 자신과 친한 입주민 몇 명 더 불러도 되느냐고 물어서 나는 합석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두 분이 합석했다.

합석한 아주머니들은 동네에서 내 소식을 들었다며 나를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 소식이라는 것은 그동안 내가 착하게 살아온 이야기, 즉 행패 부리는 공사업체를 제지하여 물류창고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만들고 입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한 것(물류창고가 완공되면 대형 공사차량의 통행이 크게 늘어난다), 전원주택 입주민 사이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던 104호 입주민의 기를 꺾어놓은 것(그 놈이 나한테 까불고 난 직후에 초등학교 셔틀버스가 전원주택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자 조용해졌다고 한다), 입주민들의 차량이 내 토지를 경유하도록 허락한 점, 전원주택 시공사 사장이 토지 임대료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대형차량 진입만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임대료도 받지 않은 것, 내 땅에 꽃과 나무를 심는 것 등이다. 한때 동네에 이상한 이야기가 돌기는 했지만, 지금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왜 하는지 다 알게 되었고, 그 일이 입주민들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다 안다고 했다. 또한, 입주민들이 내 일에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도 했다.

아주머니들은 내가 그동안 해온 일에 감사를 표한 뒤 궁금한 게 있다고 했다. “혹시 이 동네에 살던 사람 중에 ㄱ성ㅇ이라고 아세요?” 나는 답했다. “ㄱ성ㅇ이요? 그 새끼 사기꾼인데요?” 내 대답에 아주머니들이 탄식했다. 전원주택 시공사 사장과 땅 주인이 사기꾼한테 당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예전 어른들은 뻑 하면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가령, 일본에는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면서 일본의 장인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건 예전 어른들이 신문이나 읽고 세상을 다 아는 줄 착각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우리 동네만 해도 가업을 잇는 집이 있었다. 3대에 걸친 도둑놈 집안도 있고 2대에 걸친 사기꾼 집안도 있는데, 대를 이어 사기치는 놈이 바로 ㄱ성ㅇ인 것이다.

아주머니들에게 들은 바는 대강 다음과 같다. 전원주택 토지 주인과 시공사 사장을 연결한 사람이 ㄱ성ㅇ이다. ㄱ성ㅇ이 두 사람을 이어줄 때 성사되는 건당 얼마씩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 전원주택 사업이 잘 되니 시공사 사장은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가 되었다는데 이 때 문제가 생겼다. 전원주택 시공사 사장이 ㄱ성ㅇ과 계약할 때는 개인사업자였는데 이후 법인사업자가 되었으니 법인사업자가 된 이후 생긴 사업 소득에서 일부를 떼어 ㄱ성ㅇ에게 수수료를 지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시공사 사장이 ㄱ성ㅇ에게 양해를 구하고 법인 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수수료를 주기로 했는데, 이 때 ㄱ성ㅇ이 수수료를 원래 계약한 것보다 더 달라고 했고, 사장이 그렇게 주지 못 하니까 ㄱ성ㅇ이 가처분신청을 걸어버린 것이었다. 가처분신청을 걸면 어떻게 되는가? 입주민은 주택을 자기 명의로 등기할 수 없게 되고, 땅 주인도 토지 매각 대금을 못 받게 되고, 시공사 사장도 돈이 묶이게 된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동네에서 돌던 소문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동네에는 땅 주인 아저씨가 입주민들에게 땅을 넘기지 않고 있다는 소문과 그런데도 빚더미에 앉았다는 소문이 동시에 돌았다. 당시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예전에 땅 주인 아저씨가 부동산 투자를 크게 잘못 해서 빚더미에 올랐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 땅에 지은 전원주택이 스물네 채이고 그 중 분양된 것이 스물셋 채이니, 대강 봐도 땅 주인 아저씨가 받을 돈은 40억 원은 넘을 것이었다. 그 아저씨가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는 모르나 40억 원으로도 빚을 못 갚는단 말인가?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무슨 일인지를 파악했다. 거액의 돈이 묶여 빚을 못 갚으니 이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ㄱ성ㅇ이 무슨 사기를 쳤다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전원주택 부지를 중개할 때 계약서를 썼을 것이고, 이후에 ㄱ성ㅇ이 돈을 더 달라고 한들 계약서에 적힌 대로 돈을 주면 일이 끝날 것이다. ㄱ성ㅇ은 어떤 식으로 사기쳤다는 것일까?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ㄱ성ㅇ이 사문서 위조를 했어요. 검찰 조사도 받았대요.”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도 말했다. “저도 그 서류 사본을 봤는데요, 서류에 있는 서명이 땅 주인 아저씨 필체하고 완전히 달랐어요.”

전원주택 시공사 사장이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가 될 때, ㄱ성ㅇ은 땅 주인 아저씨의 서명을 위조한 가짜 계약서를 들이밀며 돈을 더 달라고 했고, 그래서 사장이 원래 계약한 것 보다 주어야 할 돈이 늘어나서 돈을 못 주자 ㄱ성ㅇ이 가처분신청을 걸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ㄱ성ㅇ이 사문서 위조를 해놓고 땅 주인 아저씨를 꼬드겨서 인감증명서를 받아냈던 것이었다. 이 부분이 재판에서 사장과 땅 주인 아저씨한테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1심에서 사기꾼 ㄱ성ㅇ이 승소했다. 아주머니들 말에 따르면, 사장 측의 변호사가 초짜인지는 모르겠으나, ㄱ성ㅇ 측이 제출한 서류가 허술하다며 승소를 자신했다고 한다. 패소 후 사장은 담당 변호사를 바꾸었다고 한다.

입주민 중에는 이 일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입주민들과 사장이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사장에게 현재 상황을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고 한다. 아주머니들하고 커피 마시면서 내가 아는 만큼은 다 말하기는 했는데, 나로서도 딱히 뾰족한 수가 보이는 상황은 아니었다.

입주민들이 등기를 하지 못하니까 부동산 대출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사는 집을 처분하고 이사 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일이 심각해질 것이다. 현재 사는 집을 팔지 못하는 상황이니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 할 경우 현재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곳에 있는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재정적으로 상당히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소송이 빨리 끝나기라도 하면 또 모르겠는데, ㄱ성ㅇ은 최대한 소송을 질질 끌고 있다고 한다. 소송을 질질 끄는 방법은 간단하다. 민사의 경우 공판에 세 번 연속 불출석하면 자동패소 하는데, 사기꾼들은 이를 반대로 이용한다. 두 번 불출석하고 세 번째 공판 때 출석해서 문서 하나 띡 내고 나서 빠뜨리고 제출하지 못한 문서가 있으니 다음 공판 때 내겠다고 한 다음, 다시 두 번 연속 불출석한다. 공판은 대체로 두 달에 한 번 열리니, 문서 한 번 내는 것으로 6개월을 늦출 수 있다. 그렇게 재판을 끌다 보면 해당 재판의 담당 판사가 바뀐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다.

소송 처리가 늦어질수록 사기꾼은 유리해지고 피해자는 불리해진다. 땅 주인 아저씨만 해도 이자 부담이 어마어마한데, 이걸 이용해서 사기꾼과 땅 주인이 합의하면 검찰 조사도 유야무야 끝날 것이다. 그러면 사기꾼은 안심하고 또 다른 사기를 칠 수 있다.

사람들이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들이 빠글빠글하게 모여 사는 갑갑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찾아온 시골에도 사기꾼들은 눈을 번뜩거리고 먹이감을 찾고 있다. 아주머니 중 한 분은 이번이 두 번째 전원주택인데 사기당한 것만 두 번째라고 한다.

멧돼지는 엽총으로 쏴죽일 수나 있지 사기꾼들은 그렇게도 하지 못한다. 뱀에 물리면 빨리 혈청 주사를 맞으면 되는데 전문 사기꾼한테 물이면 약도 없다. 시골 사는 게 이렇게 쉽지 않다.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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