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전원주택 진입로 근처에서 흙을 파고 있을 때 115호 아주머니가 나에게 인사하며 괜찮다면 커피 한 잔 하는 거 어떠냐고 했다.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같이 갔다. 115호 아주머니가 내가 괜찮다면 다른 입주민도 불러도 되느냐고 물었다. 다른 입주민들한테 내가 전원주택 진입로에서 무엇을 하며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설명하기는 했는데, 다른 사람의 일인 데다 전달할 정보가 많고 복잡하여 다른 입주민들한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고 115호 아주머니는 말했다. 내가 다른 입주민을 불러도 괜찮다고 말하자 곧바로 아주머니 두 분이 왔다. 나는 두 아주머니한테 그동안 마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조치를 해서 어떤 일을 막았는지, 만일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동네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간략히 설명했다. 두 아주머니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좋은 일 한다면서 도울 일은 없는지 물었다.
물류창고 업주가 우리 집에 민사소송을 걸었을 때 여느 시골 사람처럼 겁먹고 푼돈 받고 대충 업주와 합의했다면 몇 년 전에 물류창고가 생겼을 것인데, 물류창고가 전원주택 단지와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해도 대형 차량의 운행 자체가 크게 늘었을 것이다. 아이 있는 집으로서는 마을에 물류창고가 들어서는 것이 반갑지 않은데, 내가 물류창고를 막고 있으니 입주민들로서는 좋은 일이다. 또한, 내가 전원주택 단지 동쪽 진입로에서 작업을 해서 덤프트럭 등 대형 공사차량의 진입을 막으면서도 승용차 등 주민들의 차량의 진출입을 막지 않았는데, 이 또한 아이 있는 집으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래서 두 아주머니도 내가 하는 일을 듣고는 좋은 일이라면서 협조할 일이 있으면 협조하겠다고 한 것이다.
입주민 중 한 분은 104호 입주민 이야기를 꺼냈다. 104호 입주민의 아들이 자기 아들하고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에 다니는데 104호네 아들이 축구를 하다가 그 집 아들 다리를 확 차버려서 깁스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새끼가 어지간히 극성맞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옛말에도 그 애비에 그 새끼라고 했는데 이 경우에도 들어맞는 모양이다. 그렇게 자식이 다쳐오니 속상해 죽겠는데, 그 주에 그 새끼의 애비가 전원주택 진입로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나한테 시비 걸었고(그 입주민은 마침 창문을 통해 그 광경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주에 바로 초등학교 셔틀버스가 더 이상 전원주택 단지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고 학교 관계자에게 통지받으니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참고로, 내가 원래는 진입로 차량 통행 자체를 막을 생각이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캔커피를 주어서 셔틀버스 진입만 막은 것인데, 캔커피를 준 아저씨가 그 집 남편이었다고 한다.
내가 아주머니들하고 대화하면서 든 생각은, 전원주택 진입로에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지나가는 주민들한테 인사하기를 잘했다는 것이었다. 전원주택 단지에서 나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와중에 115호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 것도 내가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내가 다른 입주민들에게 인사를 했던 것이 유효했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입주민들한테 인사도 안 하고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도 불친절했다면 어땠을까? 입주민들의 시각에서 보자. 어떤 놈이 전원주택 진입로 근처에서 멀쩡한 콘크리트 바닥을 때려 부순다. 그 놈이 일주일에 며칠이나 때려 부수는지, 하루에 몇 시간이나 때려 부수는지 알 바는 아닌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한 번 보고 저녁 때 퇴근하면서 보니 하루종일 저러나 싶을 것이다. 내가 혈당 상승을 막기 위해 아침에 밥 먹고 나서 일하고 저녁에 밥 먹기 전에 일하고 낮에는 해가 너무 뜨거워서 일하지 않는다고 해도, 입주민들로서는 그 사정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미친 놈이 더운 줄도 모르고 하루종일 저런다고 할 것이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조경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건물을 짓는 것도 아니다. 주말에만 하는 것도 아니고 주중과 주말을 안 가리고 일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콘크리트 바닥이 깨져서 통행이 불편하다고 민원이 들어왔을 때 내가 만약에 “내 땅이에요! 저리 가요!”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주민들을 봐도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숨을 헐떡이며 씩씩거린다고 해보자. 결말은 정해져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오는 것이다. 저 놈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주민들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할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더운 날 헉헉거리면서 일하는데 누가 나한테 카메라를 들이민다고 해보자. “누구세요?”라고 물었을 때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나왔는데요 잠시 대화 가능하실까요?”라는 답변을 듣는다면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도망갈 것이다. 그러면 자막에 “제작진을 피하는 아저씨”라고 나올 것이고 성우는 내레이션으로 “돌 깨는 아저씨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라고 할 것이다.
마땅히 도망갈 곳도 없고 방송국 사람들이 좋게 좋게 말해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해보자. 무슨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대학원생이라고 답하면 방송국 사람이 어떤 과정이냐고 묻을 것이고, 내가 “박사수료...”라고 답하면 방청객들이 의외라는 듯 “오오....”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소현이 “와, 저 아저씨 박사수료래요”라고 추임새를 넣고 임성훈이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네요”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 방송국 사람과의 대화가 대충 이렇게 진행된다고 해보자.
- 방송국 사람: “졸업은 못 하신 거예요?”
- 나: “졸업해야 하는데... 뭐... 논문을 아직 못 써서... 졸업해야죠.”
- 방송국 사람: “지도교수님하고는 사이가 괜찮은 건가요?”
- 나: “네, 지도교수님은 좋은 분이죠.”
- 방송국 사람: “대학원 갑질 같은 문제는 전혀 없는...?”
- 나: “그렇죠. 지도교수는 잘못이 없어요. 논문을 못 쓴 내가 잘못한 거지...”
이 때 내가 다른 곳을 쳐다보고 그걸 카메라가 포착하고 자막으로 “회한이 어린 눈빛”이라고 하고 내레이션으로 “아저씨는 대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라고 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고 해보자. 방송에는 대비를 이루게 하기 위해 <돌탑 쌓는 아저씨> 편 뒤에 <돌 깨는 아저씨> 편을 배치할 수도 있다.
그렇게 방송이 나가면 몇 시간 뒤 커뮤니티에 “철학과 대학원 갔다가 망한 아저씨”라는 제목으로 캡처화면이 올라올 것이다. 현 지도교수님은 비교적 젊으니까 커뮤니티에 올라온 것을 볼 수도 있고, 전 지도교수님은 노인이라 <세상에 이런 일이>를 텔레비전으로 볼 수도 있다. 전 지도교수님이 저녁식사를 하고 자기 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는데, <돌탑 쌓는 아저씨> 편을 보고 가슴이 뜨뜻해졌다가 <돌 깨는 아저씨> 편을 본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대학원에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연출이 된 것을 보면 전 지도교수님은 현 지도교수님한테 전화를 걸어서 “천 선생... 그... ◯◯이가... 그.. 지금 신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하고 있나... 그.. 지금 그...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데...” 하는 식으로 물어볼 것이다.
내가 입주민들한테 불친절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니 끔찍하다.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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