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9

좋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먼저 던지기



몇 년 전, 언론에서 한국 학생들은 외국 학생들과 달리 수업에서 질문하지 않는다고 호들갑을 떤 적이 있었다. 교수들이 수업을 잘하는 데도 학생들이 그러는 건지, 수업을 개떡같이 해서 그러는 건지, 해당 분야 자체가 창의성을 발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인지 등은 전혀 알려주지도 않고 덮어놓고 한국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듯 문제제기가 밑도 끝도 없으니 그에 대한 해결책도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안이란 학생들보고 질문 좀 하라고 닦달하는 것이다. 어떤 교육학 박사에 따르면, 수업 내용과 유관하되 교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한 학생에게 A+를 준다고 했더니 학생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나 어쨌다나.

질문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교수가 좋은 질문의 모범 사례를 학생들에게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하다못해, 한국 육군도 신병을 족치기 전에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여준다. 질문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기른다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정도라면, 평소에 그런 사례들을 충분히 보았다는 것 아닌가? 학부 수업이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꼭 다른 학부 수업에서 나온 질문만 소개할 필요는 없다. 학회에서 다른 연구자들이 발표하고 질문한 것을 들었을 테니, 그 중 모범 사례를 소개하고 그게 왜 좋은 질문인지 해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 학자들이 한국식 교육에 절어서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해도 외국 학회에서 외국 연구자들이 발표하고 질문한 것을 들었을 테니, 같은 주제에 대해 한국 학자와 외국 학자의 접근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여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아니랄까봐 밑도 끝도 없이 학생들에게 질문하라고 닦달이나 했던 것이다.

강의자가 학생들에게 선제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며칠 전 목사님과 같이 대구에 갔을 때였다. 목사님이 내가 평소에 목사님한테 하던 이야기를 특강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자고 해서 대구까지 간 것이다. 종교사회학 학부 교양수업에서 학생들 앞에서 90분 가량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내가 종교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종교사회학을 잘 아는 것도 아니어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다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했다. 그래서 제목을 “종교사회학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이라고 하고 정말로 질문했다.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학생들 반응은 그냥 그랬는데, 의외로 질의응답 시간에는 학생들이 질문도 하고 나름대로 자기 의견도 개진했다.

내가 학부 강의는 아직 해본 적이 없지만 고등학생이나 일반인 대상으로 한 아르바이트는 여러 번 해보았다. 아르바이트 할 때 항상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구에서 할 때보다 분위기가 좋았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 때도 청중의 질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 대구에서는 평소보다 질문이 많았을까? 이에 대한 나의 가설은 질문자 자신도 답을 모르는 질문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는 것은 질문할 게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질문거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자기만 모를까봐 주저해서일 수도 있다. 강의자의 질문에 학생들이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학생이 강의자가 알고 있는 정답을 맞추지 못할까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강의자 자신도 답을 모르는 질문을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차피 그 강의실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정답을 맞추어야 한다거나 오답을 피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나는 정말로 종교사회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몰랐다고 치자. 학부에서 전공 수업이나 교양 수업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의자가 연구 중인 주제에 관한 질문을 하면 된다. 연구 중이라는 것은 아직 모른다는 것이고 학계의 다른 사람들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와 관련된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 강의실 뿐만 아니라 적어도 한국에서는 정확한 답을 아는 사람이 없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학부 수업에서 다루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기초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또한 해당 분야의 연구에서 피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 내용에서 몇 다리만 건너가면 최신 연구에 도달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수업 끝나기 10-15분 정도 남기고 수업 내용과 관련된 최신 연구를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경제학 학부 교재를 보면 중간 중간에 쉬어가는 페이지 식으로 해당 내용과 관련된 최신 연구 주제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참고하여 철학 교재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해당 내용은 시험에 안 나온다는 것을 밝히고 관심 있는 학생들이나 들으라고 하면서 최신 연구 주제에 관하여 자유롭게 이야기한다면, 적어도 정규 교과 내용을 다룰 때보다 학생들이 활발하게 질문할 것이다.

교수나 강사 입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대학 수업에서 강의자의 재량이 커봤자 중고등학교 수업에서보다 재량이 큰 것뿐이지 어차피 가르쳐야 할 내용은 정해져 있는 것이라서 대체로는 더 가르치느냐 덜 가르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수업하는 게 지겹다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수업해도 안 된다. 대체로 그런 수업은 교육적 기능이 망하기 쉬워서 강의자 한 사람만을 위한 강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전달해야 할 내용을 다 전달하고 수업 끄트머리에 강의자 개인의 연구 주제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면, 강의자 입장에서도 수업이 덜 지겨울 것이고 학생들의 새로운 발상을 듣는 기회도 생길 것이다.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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