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0

먹방 유튜버 구상



모의고사 문제 출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료 대학원생이 다른 돈벌이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니,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에 개입한 이후 문제를 출제할 주제 자체가 매우 제한되고 EBS 연계도 강화되어서 일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다. 동료 대학원생이 생각한 새로운 돈벌이는 유튜브였다. 철학 유튜버가 되어야겠다고 말했다.

내가 알기로, 한국어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철학 유튜브 채널은 <5분 뚝딱철학>이다. 철학을 정상적으로 다루는 채널 중에 이 채널만한 것이 없다. 이 채널은 한국어로 운영하는 철학 유튜브 채널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의 깊이와 상업성의 상한선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유튜브 채널 예상 수익을 보여주는 사이트에 따르면, <5분 뚝딱철학>의 예상 한 달 수입은 약 70만 원이다. <5분 뚝딱철학>의 영상은 철학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 수준의 내용으로 학부 수업 수준까지는 가지 않는다. 거기서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채널 한 달 수입이 70만 원 이하가 될 것이고, 수입을 늘리려면 철학이 아닌 것을 철학인 것처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철학 유튜브 채널로 수익을 얻으려면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영상을 제작해야 한다. 나는 동료 대학원생이 철학 유튜브 채널을 정말로 운영한다면 나름대로 가치 있는 영상을 제작할 것이니 응원하겠지만 상업성은 없을 것이라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그러든 말든 동료 대학원생은 유튜브 검색창에 “funny philosophy”라고 입력하고는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있었다.

나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철학 유튜브 채널을 만들 생각은 있는데 그건 순수하게 공익적인 목적에서 만들려는 것이지 상업적인 고려 때문에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 성공만 놓고 보면, 철학 유튜버로 성공할 가능성보다는 먹방 유튜버로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나는 아직도 왜 사람들이 남이 먹는 것을 그렇게 정신 놓고 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는 음식도 아니고 그냥 아무나 아무 데서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단지 많이 쳐먹을 뿐인 것을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일까? 하여간 상업적 성공만 놓고 보면 먹방 유튜버가 되는 편이 낫다.

어떻게 해야 먹방 유튜버로 성공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먹방 유튜버로 성공했는데 철학 박사라면 다른 먹방 유튜버와 차별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참 먹고 있는데 댓글창에 철학 어쩌고 하는 놈이 있으면 차단하고 ‘철학’을 금칙어로 정하고, 누가 철학에 대해 물어 봐도 “그거 다 예전에 하던 거지 지금은 먹방 유튜버다”라고 하면서 힘을 숨기고 사는 척한다고 해보자. 지식 유튜버라고 하면서 치고 올라오는 유튜버 채널들 중에서 철학을 어설프게 다루다가 허점을 보이는 놈이 있으면 냅다 후려쳐서 채널 성장을 막는다면 어떨까? 유사 철학으로 먹고사는 업자들이 까불고 다니는 것을 방송 소재로 삼을 수도 있겠다. 한남충 보이루 논문 사태 같은 일이 벌어져도 방송 소재로 삼을 수 있겠는데, 논문 한 줄씩 읽으면서 이게 왜 개소리인지 설명하되 하루에 한 쪽만 읽는 방식으로 한 달 내내 라이브 방송을 하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방송 중간에 이런 말도 할 것이다. “지금 먹고 있는 네네치킨은 네네치킨 ◯◯점에서 후원받은 거구요, 블루문 맥주 이건 광고가 아니고 그냥 제가 좋아해서 산 겁니다. 광고주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사학위가 먹방 유튜버로서 차별화에 도움이 된다면 교수 경력은 차별화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직 교수 출신 먹방 유튜버라고 해보자. 많이 못 먹어도 사람들이 이해해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시점에 먹방 유튜버를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직 교수는 최재천 교수다. 최재천 교수는 10년 넘게 통섭을 주창해왔고 앞으로는 대여섯 번쯤 직업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정작 본인은 교수 재직 시절부터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예전에 공중파에서 했던 이야기를 유튜브 채널에서 하는 것뿐이다. 아직도 조회수가 잘 나와서 예전부터 하던 대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조회수가 떨어질 때쯤 먹방 유튜버로 전환한다면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설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은 내용의 강연이더라도 인사말을 “전 대학교수 현 먹방 유튜버 최재천입니다”라고 한다고 상상해보자.

최재천 교수가 다른 젊은 먹방 유튜버들처럼 평범한 음식을 많이 먹는 식으로 승부를 보려 하면 안 될 것이다. KBS 1TV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나 TV조선의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작하여 고-연령층의 조회수를 빨아들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노인네들이 무슨 유튜브를 보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극우 유튜버 채널의 주 시청자들이 고-연령층이며 슈퍼챗을 어마어마하게 보낸다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사람이 먹는 건 식물 아니면 동물이니까 지방 곳곳의 토속음식을 먹으면서 중간중간에 해당 지역의 동식물의 생태나 지리적 여건 등을 말하면 힘을 숨긴 전직 대학 교수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힘은 안 숨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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