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될 때, 공사에 동원된 대형 차량이 길을 잘못 들어서면서 엉뚱한 곳으로 들어와서 마을 안길과 내가 설치한 구조물을 파손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었다. 나는 전원주택 단지 분양사무소를 찾아가서 그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여러 번 말했다. 전원주택 단지는 애초에 시청에서 허가받을 때 서쪽 길을 진입로로 했는데 공사 차량들이 동쪽 길로 진입하고 있으니 이를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 분양사무소에 갔을 때는 직원이 듣는 척을 하기는 하더니 나중에는 건성건성 대답했다. 보강토 블록으로 만든 화단이 망가졌을 때 아무리 봐도 전원주택 단지로 들어가던 대형 차량이 들이받아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분양사무소에 가서 직원한테 진입로 문제를 다시 언급하니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 그러시면 CCTV를 설치하시지 그래요?”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업체를 봤나? 내가 직원인데 동네 주민이 그렇게 말했다면 믹스 커피라도 한 잔 주면서 달래기라도 했겠다. 직원이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아서 내가 물류창고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저기 물류창고 부지가 왜 몇 년째 저렇게 방치되었는지 아느냐, 왜 저기에 벼가 자라는 줄 아느냐, 저기 묶인 게 14억 원이다, 이러시면 곤란하다 등등. 직원은 미동도 없었다. 직원은 나보고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었다. 내가 대학원생이라고 답하자 직원은 화단 만들고 나무 심고 하시길래 동네에서 환경 미화하시는 분인 줄 알았다고 했다.
사실, 동쪽 진입로가 뚫린 것도 아버지 작품이다. 아버지가 임야를 헐값에 팔면서 거기에 길이 났다. 아버지가 얼마나 멍청하게 일을 처리했느냐면, 위치가 좋은 임야를 헐값에 팔면서 그 중 쓸모없는 조각 땅을 다시 사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심슨가족>에 나오는 호머 심슨도 그렇게는 안 한다. 임야를 팔면서 중요 부위는 헐값에 팔고 사과 껍질 같은 부위는 제값 주고 사면서 토지사용 승낙서까지 썼다. 급히 돈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임야를 내가 유학 가느라 판 것도 아니고(멍청해서 유학을 못 감) 가족 중에 죽을 병에 걸려서 판 것도 아니다(가족이 모두 건강함). 아버지가 허튼 데 헛돈 쓰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진입로는 뚫렸는데 정작 아버지 땅을 산 사람은 토목공사 후 공사대금을 못 갚아서 그 땅이 법원 경매에 들어갔고 주인이 몇 번 바뀌더니 지금까지 주택을 못 짓고 들깨가 자라고 있다. 전원주택 짓는 사람만 진입로를 거저 확보한 셈이다.
이런 개떡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싶겠지만, 찾아보면 다 방법이 있다. 우선, 사과 껍질 같은 부위는 아버지 소유에서 어머니 소유가 되었다. 토지사용 승낙서는 계약서와 달라서 토지 주인이 바뀌면 법적 효력이 사라진다. 그래서 조치를 취하려고 보니 어머니도 토지사용 승낙서에 서명을 했다는 것을 몇 년 만에 알게 되었다. 해당 토지를 아버지 소유에서 곧바로 내 소유로 넘기지 않고 어머니 소유가 된 것은 당시 증여세를 낼 돈이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땅은 내 땅인데 어머니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서명했던 것이다. 이래서야 집안의 기강이 잡히겠는가? 나는 집에서 약간 소동을 부린 뒤 해당 토지를 어머니 소유에서 내 소유로 바꾸었다.
해당 토지를 어머니 소유에서 내 소유로 바꾼 뒤 대형 차량이 동쪽 진입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보니까, 구조물만 설치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공사 차량의 운전 기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네이게이션이 동쪽 진입로로 들어오도록 안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요 네비게이션 업체에 연락하여 해당 토지에서 길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고, 네이버지도, 카카오맵, 아이나비 등 주요 업체 여섯 군데에서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 이제 전원주택 단지로 진입할 때 네비게이션은 서쪽 진입로로 진입하도록 안내한다.
네비게이션에서 길을 없애보니까 어떤 식으로 하면 네이게이션에 길을 등록할지도 대충 감이 왔다. 내가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네비게이션에서 없앤 길을 다른 사람이 등록하지 못하게 하게 위해 해당 토지 중 일부가 도로였다는 흔적 자체를 없애기로 했다. 동쪽 진입로에서 시멘트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시멘트를 다 뜯어내고 흙이 드러나고 거기에 풀이 자라면 주변 시멘트 길과 색깔 자체가 달라져서 네비게이션 업체에서도 도로로 등록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시멘트를 뜯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함마로 시멘트 바닥을 내리친다. 계속 내리치다 보면 시멘트 바닥에 금이 간다. 곡괭이를 바닥에 찔러넣어서 병따개로 병뚜껑을 따듯이 시멘트 덩어리를 뜯어낸다. 그렇게 반복한다. 그렇게 지금까지 몇 톤을 뜯어냈는데 아직도 뜯어낼 것이 몇 톤 더 남았다.
시멘트 바닥을 망치로 내리치던 어느 날, 젊은 아주머니가 나에게 다가와서 시멘트를 뜯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는데 통학버스가 안전상의 이유로 전원주택 단지로 진입하지 못할 상황이라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나는 시멘트를 뜯었을 때 승차감이 잠시 줄어들 거라고만 생각했지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그 아주머니한테 좋게 잘 말해서 돌려보낸 뒤 작업 방식을 바꾸었다. 시멘트를 최대한 조용히 뜯고 시멘트를 뜯어낸 자리에는 곧바로 흙을 채워 넣었다. 근처에 화단을 새로 만들면서 나오는 흙을 시멘트 뜯어낸 자리에 부었다.
시멘트를 뜯자마자 흙을 부었으니 안전상의 문제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는 차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에게 작업을 중단해달라고 말했다. 내가 시멘트를 뜯어서 차량 바닥이 긁히고, 통학 차량이 들어오는 데 지장이 있어 주민들이 피해를 받는다고 말했다. 나는 작업의 취지를 설명한 뒤 이 땅은 내 소유지만 대형 차량의 통행만 막으려는 것일 뿐 승용차, 승합차, 청소 차량, 소방차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유지라고 하시면 뭐라고 할 말이 없는데 그래도 주민들이 피해를 받는 상황이 되면 민원을 넣을 수밖에 없어요. 부탁드릴게요.”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주민을 봤나? 민원으로 이런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을 보니 민원도 안 넣어본 것이 분명한데, 어디서 민원 운운하면서 나한테 겁을 주려고 하나? 내가 법을 어겼나, 남의 땅을 파헤쳤나, 주민들의 통행을 방해했나? 차량 바닥이 긁히는 건 애초에 도로 설계를 거지같이 했기 때문인데 어디 나한테 핑계를 대고 있나? 동쪽 길 입구에서 전원주택 단지까지 100미터밖에 안 되는데 그거 좀 걸어가는 게 피해라고? 어디 고귀한 혈통이라고 100미터도 안 걷는다고?
민원 운운하던 아저씨를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내가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웬만하면 시끄럽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민들 폼을 보니 두고두고 문제 삼을 판이었다. 이럴 때는 선제적으로 기선을 제압해서 질려버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뒤탈이 없고, 설사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소수여서 힘을 모으지 못한다. 나는 “◯◯리 ◯◯◯-◯◯(임야) 콘크리트 제거 및 복토 작업과 관련하여 양해를 구하는 글”이라는 제목의 A4용지 다섯 쪽 분량(12포인트)의 글을 전원주택 단지의 모든 집에 뿌렸다.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작업 취지
2. 주민들의 우려
2.1. 길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가 아닌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변
2.2.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흙을 채워넣은 곳에서 흙이 유실되어 차의 바닥이 긁힌다는 의견에 대한 답변
2.3. 도로 사정이 안 좋아짐에 따라 유치원 어린이집 차량의 운행이 어려워서 주민이 피해를 본다는 의견에 대한 답변
3. 향후 계획
4. 참고 사항
5. 연락처
해당 글에서 나는 주민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고 대형 차량의 진입만 막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 업체에서도 수차례의 시정 요청을 무시했다는 것, 시멘트를 다 뜯어낸 뒤 계산된 위치에 나무를 두세 그루 심을 것임을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만 쓰면 상황 파악 못하는 주민들이 나에게 덤빌 수도 있다. 2.3과 4는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2.3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차량의 진입 가지고 찡찡거리는 주민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쓴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충 살다 대충 아무나 만나서 고만고만한 애를 낳고 산다. 자기들이 설현이나 수지를 낳은 것도 아니고 김연아나 손흥민을 낳은 것도 아니고 장하석이나 허준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얼마나 대단한 애새끼를 낳았다고 100미터도 안 걷겠다고 꼴 보기 싫게 찡찡거리는가? 그런데 이렇게 원색적으로 쓰면 사람이 거칠어 보일 테니 점잖게 세 가지만 강조했다.
첫째는 유치원 및 어린이집의 차량이 나의 토지를 경유하여 전원주택 단지로 진입하는 것은 주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온 자녀가 현관문 코앞에서 내렸다면, 그것은 나의 호의의 결과이다. 둘째는 동쪽 길 입구에서 전원주택 단지까지는 불과 100미터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강남이나 목동에 사는 아이들도 몇 백 미터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닌다. 셋째는 고작 몇 걸음 걷지 않고자 다른 사람의 적법한 재산권 행사를 마치 불법적인 행위인 것처럼 여기며 항의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4는 모든 일은 자문 변호사의 법률적 검토를 받고 행하는 것이며 내가 하는 일 중 어떠한 불법적인 요소라도 있다면 즉시 중단하고 원상복구 및 손해배상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민원 운운하는 놈들도 입을 다문다.
양해를 구하는 글을 주민들에게 돌린 것이 8월 2일(수) 저녁 때였는데, 그러고 나서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점심 때쯤에 전원주택 단지 시공사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입주자 대표가 그 전날 내가 돌린 글을 가져와서 읽어보았다고 했다. 입주자 대표가 찾아와서 관련 일에 대해 말하는데 자기도 약간 짜증이 났다면서 나를 달래려고 했다. 내가 글에 쓴 대로 애초에 서쪽 길을 진입로로 하여 허가받은 것도 맞다고 했다. 시공사 사장은 내가 물류창고 업체와 소송 중인 사실도 알고 있었고 다른 토목건설 업체와 접촉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 물류창고 업체에 대해 비산먼지 발생 등으로 자기도 민원을 넣었다면서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서쪽 길은 굴다리 때문에 15톤 트럭도 못 들어가고 5톤 트럭으로 두세 대가 들어가야 하는데 최근에는 서쪽 길로 공사 차량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비게이션이 서쪽 길로 가라고 하죠? 그거 제가 한 거예요.” 어쨌거나 사장은 협력한 것은 협력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했으면 좋겠다고, 며칠 내로 빨리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사장은 직원과는 전혀 다르게 매우 정중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근에 업체에서 길가에 있는 집을 6억 원이나 주고 구입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동쪽 진입로로 공사차량이 마구 들어올 상황이었을 텐데 이제 와서 이러는 것이다. 내가 업체에 공사 차량 진입과 관련하여 문제 해결을 요청했을 때, 그 때마다 내가 흙투성이로 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콧방귀도 안 뀌었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타협이란 말인가? 타협은 하고자 하는 일을 혼자서 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나 하는 것이다. 나는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방법을 알고 혼자서 해결할 능력이 있고 업체에서 받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타협할 필요가 없다. 물류창고는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으니 그와 관련해서도 협력할 것이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약간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흙투성이인 채로 분양사무소를 찾아갔을 때 업체에서 매끄럽게 해결했으면 나도 수고롭게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 일을 처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업체도 나름대로 매끄렵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은 상대방이 허술하게 보이면 일을 대충 처리하고 꼭 실력 행사를 했을 때야 뒤늦게 공손해지는가? 어쨌거나 나는 계획대로 일을 처리할 생각이다.
(202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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