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4

글쓰기 교양수업 수업 개선안 제안



몇 달 전, 기초교육원에서 개최한 교양교육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한 적이 있다. 학부 때도 공모전 같은 데 한 번도 응모한 적이 없었는데, 30대 후반에 처음 응모한 것이다. 평소에 글쓰기 교양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마침 공모전이 열렸고, 교수와 강사뿐만 아니라 학부생, 대학원생, 교직원도 참여 가능하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었다. 창고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상금이 100만 원이었다. 평소 생각했던 것을 간단히 정리해서 기초교육원에 보냈고, 접수 확인 메일도 받았다.

내가 제안한 것은 학부 글쓰기 교양수업의 전면적인 개편이었다. 기초교육원에서는 다른 학교보다 글쓰기 교육에 신경 쓴다고 자부하고, 실제로 다른 학교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프로그램이 좋다고 볼 수도 없고,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글쓰기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을 학생들에게 시키게끔 프로그램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학부 글쓰기 강의는 공통과목인 <대학국어>와 선택과목인 <인문학 글쓰기>, <사회과학 글쓰기>, <과학기술 글쓰기>로 구성되었다. 나는 학부를 다른 학교에서 다녔기 때문에 지금 다니는 학교의 <대학국어> 수업을 들은 적 없기는 하지만, 해당 과목에서 대학에서 필요한 글쓰기 능력과 아무 상관 없는 것을 가르쳤으며, 과제도 하나 같이 쓸데없다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대학국어>를 수강했던 동료 대학원생들에게서 여러 번 들었다. 왜 쓸데없이 한자어를 외우게 하는 것이며, 왜 도자기를 묘사하라고 하는 것인지, 그런 것이 글 쓰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다들 의문을 품고 있었다. 심지어 틀린 내용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학생이 글에서 자기 자신을 ‘나’라고 지칭하면, 해당 수업의 강사는 “학술적 글쓰기는 객관적인 글이니 주관적인 표현인 ‘나’라고 쓰면 안 되고 ‘필자’라고 써야 한다”며 수정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분석철학 논문에서도 글쓴이 자신을 ‘나’라고 지칭하고, 사회물리학 논문에서도 글쓴이 자신을 ‘I’나 ‘we’로 쓴다. 하나도 객관적이지 않은 글이나 쓰면서 글쓴이를 ‘필자’라고 지칭하면 글이 객관적으로 뿅 하고 바뀌나? 이건 조선시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짐’, ‘과인’, ‘소자’, ‘소신’이라고 부른 것과 다를 바 없는 낡은 관습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내가 조교 업무를 했던 선택 과목도 글쓰기 능력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예전 <과학기술 글쓰기>에서 했던 과제를 보자.

과제 중에는 설명문 쓰기가 있었다. 무엇에 대한 설명문인가? 과학적인 현상이나 원리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설명하라고 시킨다. 그러면 학생들이 각자 다른 주제로 글을 써온다. 과제를 첨삭하기 위해서 다른 주제, 다른 내용의 글을 일일이 읽어야 하니, 교육 효과에 비해 투입되는 노동력이 불필요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왜 설명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아무거나 붙잡고 설명하라고 시키니까 정말로 아무거나 써온다. 매끄럽게 써오면 이미 백과사전에 다 있는 내용이고, 지저분하게 써오면 그게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려고 백과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이게 말이 안 되니까 그 다음 학기에는 학생들 각자의 전공을 설명하라고 시킨다. 해당 학과의 전공 수업도 몇 개 들어보지도 않은 학생들이 해당 학과를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도 이건 과학적인 원리나 학과를 소개하는 것은 오히려 나은 편이다. 예전에는 글쓰기 수업에서 “휴대전화를 설명해 보시오”라는 과제도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기초교육원 워크샵에서 들은 적도 있다. 밑도 끝도 없는 과제를 내주면 밑도 끝도 없는 글을 써올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제를 내라고 시킨 선생님한테 휴대전화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어떤 글을 써올지 궁금하다.)

과제 중에는 논증 에세이 쓰기도 있었다. 무엇에 관한 논증 에세이인가? 수업에서 지정한 도서를 읽고 거기서 논쟁거리를 추출해서 논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책이 단일 저자가 쓴 교양서라는 점이다. 과학계의 논쟁거리를 다룬 책이라면 모를까, 과학자 한 사람이 일관되게 쓴 책에서 논쟁거리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과학자와 능력이 대등하면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그 책을 가지고 논증 에세이를 쓸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학생들이 매끄럽게 쓴 교양서를 가지고 무슨 논증을 하겠는가?

<인문학 글쓰기> 같은 경우는 상황이 더 안 좋다. <인문학 글쓰기>인데 철학도 아니고 역사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글을 쓰게 한다. ‘성찰적 글쓰기’라고 일기 쓰기 비슷한 것을 쓰게 하고, ‘자유 에세이’라고 아무 글이나 쓰게 한다. 학생들이 모두 중구난방으로 써제끼니 조교는 일일이 다 읽어도 해줄 말이 마땅치 않다. 노동력만 들어가고 성과가 변변찮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게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나 강사의 능력 문제인가? 아니다. 글쓰기 교양수업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과제를 내줄지를 기초교육원에서 일괄적으로 정한다. <과학기술 글쓰기>라면, 설명하기를 어떤 식으로 가르칠지는 교수나 강사의 재량이더라도 설명문 쓰기는 무조건 과제로 내주어야 한다. <인문학 글쓰기>라면, 교수나 강사가 철학과 출신이든 사학과 출신이든 무조건 성찰적 글쓰기를 과제로 내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교강사가 되든 애초부터 잘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학생이 쓰기도 어렵고 교수나 조교가 지도하기도 어려운 과제를 내주는 것은, 여러 학과의 학생들을 한 수업에 다 때려넣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글쓰기>를 보자. 같은 과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논쟁거리가 될 만한 공통의 자료를 읽게 할 텐데, 전공이 제각각인 학생들을 한 수업에 다 때려넣으니 마땅히 읽힐 교재가 없다. 특정 전공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는 교양서를 읽힐 수밖에 없고, 그런 교양서는 모든 전공의 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매끄럽게 썼고, 매끄럽게 썼다는 것은 주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내용으로 책을 구성했다는 것이고, 그런데도 그 책을 읽고 논증 에세이를 쓰라고 하니, 학생들은 혼란에 빠져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게 된다. <인문학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인문대 학생들을 한 수업에 죄다 때려넣어 철학을 할 수도 없고 역사를 할 수도 없고 문학을 할 수도 없으니, 철학도 아니고 역사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일기 쓰기와 찡찡거리기를 과제로 내줄 수밖에 없다.

내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학과별 글쓰기 수업을 개설하는 것이다. 이게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 한두 해에 될 일도 아니니 지금부터 단계별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지다. 예상되는 문제점과 비판, 그에 대한 대응 등도 간략히 적었다. 나름대로 글쓰기 수업 교강사들의 고용 보장도 고려했다. 나는 나의 문제제기나 대안 등이 어설플 수는 있어도 논의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모전에서 뽑히지 않았다.

이후에 기초교육원 소속의 어떤 선생님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공모전에 냈던 제안서와 관련하여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나의 제안서를 읽은 것은 아니고, 글쓰기 교양수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 선생님은 기초교육원 소속이고 글쓰기 수업 프로그램 구성에 참여하셔서 나름대로 내부 사정을 잘 아시는 것 같았다. 그 선생님께 들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초교육원에서도 글쓰기 교양수업과 관련하여 고민이 많다고 한다. 학과마다 글 쓰는 스타일도 다르고 요구하는 능력도 다르다는 것도 안다고 한다. 그런데 학과들은 기초교육원에서 글쓰기 교육을 전담해 주기를 원하며, 학부생들이 글을 못 쓰면 왜 기초교육원에서는 학생들을 제대로 안 가르치냐고 따진다고 한다. 기초교육원에서 학과별로 글쓰기 교육을 진행할 수 없는데도 학과에서는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다.

학과별 글쓰기 교육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어떤 학과에서는 어떤 선생님이 자원에서 학과 맞춤형 글쓰기 수업을 개설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의욕이 과했던 것일까? 첫 해 열린 수업에서는 그럭저럭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그 다음 해 열린 수업에서는 100명 정원에 네 명이 지원하는 바람에 폐강되었고, 이후 다시는 해당 수업이 개설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 대학의 글쓰기 프로그램도 검토해 보았다고 한다. 통째로 가져오면 안 되나? 안 된다. 외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글쓰기를 어느 정도 가르치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그 이후의 내용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 대학의 글쓰기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면 외국 고등학교의 글쓰기 프로그램까지 다 가져오면 안 되나? 그러면 글쓰기 교양수업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러면 글쓰기 수업만 여러 개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다른 전공 수업이나 교양 수업을 듣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인문학 글쓰기>의 경우 철학도 아니고 사학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게 맞지만, 예체능 학생들까지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상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인문학 글쓰기>를 <철학적 글쓰기>, <사학적 글쓰기>, <문학적 글쓰기>로 나누면 예체능 학생들이 갈 곳이 없다. <예체능 글쓰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예체능의 각 과는 문사철보다 더 다른 데다 현실적으로 <예체능 글쓰기>를 가르칠 인력이 마땅치도 않고 수업 개발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에 사회에서 인문학에 기대하는 바도 약간 반영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수업 구성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일이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나 보다. 그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내 제안서가 왜 공모전에서 떨어졌는지 이해가 갔다. 그래도 내 제안서를 뽑아주면 좋지 않았을까? 창고 지붕이라도 좀 고치게.

내가 아무리 기획안을 잘 쓴다고 한들, 내 의견을 쉽게 채택할 대학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내 기획을 검토라도 하게 하려면, 한 학과에서 학과별 글쓰기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철학과에서 그런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사학과나 어문계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처음부터 정규 수업으로 만드는 것이 무리라면, 방학 중에 특강 형식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학부생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방학 중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몇 번 운영해 보면서 노하우를 익힌 다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1학점짜리 정규 수업으로 편성하고 이후에 2학점이나 3학점짜리 수업으로 바꾸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려면 대학의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어야 하니 일단 교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교수가 될 수 있을까?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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