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6

우체국에 다니는 초등학교 동창

초등학교 동창이 우체국 직원이라서 어머니가 택배 보낼 때 가끔 본다. 우편물이 가벼우면 어머니 혼자 우체국에 가시지만, 택배 등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면 내가 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도 우체국에 따라간다. 택배만 들어서 옮기고 가는 거라서 동창하고 인사 정도만 하고 우체국에서 나온다.

오늘은 어머니가 얼린 곰국을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택배를 보냈다. 어머니가 못 들 만큼 택배가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와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른 것이어서 나도 우체국에 들어갔다. 택배를 보내려고 무게를 재는데 동창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스티로폼 상자가 깨졌음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새 스티로폼 상자를 가지러 집에 가는 동안 나보고 우체국 안에서 택배를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한동안 멀뚱히 자리에 앉아 있는데 창구에 있던 동창이 나를 불렀다. 동창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환하게 웃는 것 같았다. 요즈음 뭐 하고 지내느냐는 물음에, 나는 대학원에 다닌다, 철학 전공이고 박사수료 했다고 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동창이 이렇게 물었다. “무슨 철학이야? 불교철학?” 이렇게 말하고 동창은 웃었다. 나는 태어나서 불교 신자였던 적이 없고,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하여간 나도 웃었다. 불교철학은 아니고 과학철학이라고 답하는데 그 와중에 어머니가 새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우체국에 들어왔다.

그 동창을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 처음 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이었던 것 같다. 터미널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여자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서 고개를 들었다. 인도 미녀처럼 생긴 여자가 한국말로 나에게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랐는데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다행히도 동창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름이 기억났다. 그런데 동창과 초등학교 다닐 때 무엇을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동창은 내가 초등학교 때 무엇을 했는지를 파편적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기억해서 말했다. 대충 맞는 말 같았다. 그런데 여전히 동창이 초등학교 때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동창의 얼굴이 초등학교 때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는 것과, 그러니까 동창이 얼굴에 뭔 짓거리를 한 게 아니라는 것과, 그런데도 25년 전쯤 까만 시골 아이가 지금은 인도 미녀처럼 되어서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어벙벙하게 있었다. 동창은 자기가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고 어디로 가버렸다. 그 뒤로 우체국에서 가끔 만난 적은 있으나 우체국에 들어올 때 “안녕”이라고 말하고 우체국에서 나갈 때 “안녕”이라고 말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어머니와 아구찜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체국에서 만난 동창 이야기를 했다. 동창이 나보고 뭐 하고 지내는지 물어서 나도 동창이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았어야 했는데 묻지 못했다면서 “연락처라도 물어보았어야 하나?” 하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보고 “미친 놈아, 보나 마나 유부녀일 텐데 연락처를 왜 물어봐?”라고 핀잔을 주었다. 나이를 서른여덟이나 먹고 직업이 있고 여자이고 시골에 산다면 이미 결혼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추론은 신빙성이 있다. 어머니는 말했다. “애가 열 살은 됐겠다.” 이 또한 신빙성이 있는 추론이다. 그래도 동창한테 결혼은 했느냐고 물어보았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싶기도 하다.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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