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창 밖의 풍경을 보다가 문득 내가 가을을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마흔이 될 테니, 아마도 제정신으로 가을을 볼 기회는 많아야 40번 정도 남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동료 대학원생에게 하니, 동료 대학원생은 기후 변화가 진행 중이어서 40번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마침 대학원생 단체카톡방에 동료 대학원생이 산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그 사진을 보니 산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나 산이나 둘 다 가을인데, 내가 그렇게 산을 즐겨 찾는 사람도 아닌데, 그래도 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에 가기는 가야겠는데, 그렇다고 따로 시간 내서 다른 지역까지 가서 산에 오르기에는 시간이 좀 애매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월요일에 <성장의 날> 발표를 끝내고 학교 뒤에 있는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성장의 날>은 대학원생들이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창작물을 발표하는 자리다. 완성된 원고든 진행중인 원고든 탐색중인 주제든, 하여간 창작물과 관련되었으면 발표할 수 있다. 마침 내가 발표할 차례였다. 어차피 발표문도 산으로 갈 것이니, 발표 끝나고 나도 산으로 가면 되겠다 싶었다. 학교에서 발표를 끝내고 산에 오른 다음, 산 반대편으로 넘어가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면, 부담 없이 등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성장의 날>에 학교에 갈 때는 노트북 컴퓨터도 안 가져가고 USB만 가져가려고 했다. 그런데 일기예보를 보니 월요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다. 등산을 포기하고 발표만 했는데 비는 오지 않고 날씨는 맑았다.
산에 오른 것은 금요일 오전이었다. 목요일 오후에 <학과장과의 대화>에 참석하느라 학교에 왔고 마침 내가 수업 조교로 참석하는 금요일 오전 학부 수업이 휴강이어서 그 시간에 산에 올랐다.
분명히 동료 대학원생이 사진으로 찍은 산은 알록달록했는데, 내가 올라간 산은 죄다 우중충한 갈색이었다. 그 사이에 죄다 낙엽이 진 것이었다. 그렇게 쓸쓸한 가을 산인데, 그래도 이왕 간 것이라 곧장 정상으로 올라갈 길을 두고 일부러 우회해서 정상에 올랐다. 평일이라 사람이 별로 없는 줄 알았는데 정상에 올라가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도 일부러 우회해서 내려갔는데 일정 시점부터는 아예 근처에 사람이 없었다. 다 내려와서 보니 내가 등산로가 아닌 길로 내려온 것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연구실 앞에 와서야 연구실 건물 근처에 있는 단풍나무가 보였다. 파랑새도 아니고, 내가 찾았던 단풍은 연구실 코앞에 있었다.
(2022.11.1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