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8

경계석 설치하기



몇 주 전,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어머니가 옆집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미친 놈의 노인네라고 욕을 했다. 어머니가 밭에서 일하는데 옆집 할머니가 오더니, 저 건너편 논에 흙 메우는 것은 허락해주고 왜 자기네 논에 흙 메우는 것은 허락 안 해주었느냐, 허락하지 않아서 성토 기간이 늘어나서 돈이 많이 들었다면서 역정을 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덤프트럭 통행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통행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서 못 막았던 것인데, 옆집에서는 우리 집이 덤프트럭 통행을 허락해서 그렇게 된 줄 알았던 모양이다.

미친 놈의 노인네라고 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네가 남의 집 옆에 흙을 쌓아서 그 집을 흙으로 파묻다시피 해놓은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우리집이 길을 빌려주지 않아서 성토하는 데 돈이 더 들었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옆집 막내 아들은 “형수님(나의 어머니) 입장 곤란하시지 않게 (성토 작업한 땅에) 3년은 농사를 짓겠다”고 하지 않나, 허락도 안 했는데 우리집 땅을 메워서 뭔 짓거리를 하려고 하지 않나, 땅을 판다고도 안 했느데 뻑 하면 땅을 (사는 것도 아니고) “사준다”고 하지 않나, 다들 땅에 환장 나서 별 염병을 하고 있는데, 구순이 가까운 노인네도 똑같이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옆집 할머니는 내가 밭에 꽂아놓은 쇠파이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언제까지 꽂아놓는 것이냐고 어머니께 꼬치꼬치 물었다고 한다. 옆집 할머니가 귀가 먹어서 그렇지 확실히 똑똑하기는 똑똑한 모양이다. 주말마다 자식들이 할머니 집에 오는데, 분명히 자식들이 쇠파이프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빨리 물류창고에서 길을 뚫어야 하는데 내가 합법적으로 물류창고 공사를 막고 있으니까 옆집에서도 환장할 것이다. 어머니는 옆집 할머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귀가 먹어서 설명해봐야 듣지 못한다.

옆집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예방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2월에 덤프 트럭의 통행을 못 막은 직후, 나는 사유지를 지나는 가로지르는 사도(私道)의 양 옆에 구조물을 설치해서 15톤 트럭 이상의 진입을 막는 방법을 고안했다. 내가 또 뭘 하는 것을 보고 “너는 언제 공부를 하려고 그러냐”고 하던 어머니는, 내가 적절한 위치에 쇠파이프만 몇 개 박았는데도 차량들이 서행하는 것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당장 해야겠다.”

당장 구조물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사정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당시에 다른 할 일도 있었고, 구조물을 싸게 설치하려니 외관상 너무 안 좋아질 것 같았다. 개비온을 설치하려고 하니 개비온을 설치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업자한테 맡기려고 해도 개당 15만 원이 넘었다. 다른 급한 일부터 하고 구조물 설치를 미루고 있었는데, 옆집 할머니가 그런 미친 소리를 했다는 말을 들으니, 빨리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한 대로 아버지가 예전에 박았던 경계석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중장비 기사 일을 하는 옆옆집 아저씨에게서 화강암 경계석을 얻어서 길 옆에 경계 표시를 한 적이 있다. 경계석을 거의 얹어놓은 수준인 데다 그나마 유효한 위치에 꽂은 것도 아니어서, 내가 기존의 경계석 몇 개를 옮겨 경계 표시를 새로 하기로 했다. 화강암은 비중이 2.5-2.7이라서 화강암 경계석의 크기가 100×20×25(cm)면 무게는 130kg 정도가 된다. 내 힘으로 번쩍 들어올릴 수는 없으니 살살 굴려서 옮기기로 했다. 대충 옮겨서 위치를 잡고 땅을 파려고 했다. 삽이 들어가지 않았다. 곡괭이로 땅을 찍으니 불꽃이 튀겼다. 곡괭이로 찍어서 불꽃이 튀겼다는 것은 일반 퇴적암이 아니라 화강암처럼 경도가 높은 암석이 있다는 것이다. 흙을 살살 걷어내니 화강암 경계석이 묻혀 있었다. 땅에 묻힌 화강암 경계석을 파내니 바로 옆에 또 다른 경계석이 있었다. 또 하나 파내니 경계석이 또 하나 있었다. 경계석이 줄줄이 계속 나왔다.

12년 전, 아버지는 산소 주변을 정돈하면서 밭에서 흙을 걷어올려 길가에 쌓고는 꽃나무와 잔디를 심었다. 그 당시 옆옆집 아저씨에게서 경계석을 얻어 길 주변에 둘렀다. 경계석은 원래 포장도로 위에 설치해야 하는 것인데 아버지는 그냥 땅바닥 위에 경계석을 눕혀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계석이 땅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에 덤프 트럭 등이 몇 번 밟고 가니 경계석이 땅 속으로 완전히 파묻히게 되어 길이 넓어졌고, 마을안길 밑으로 도시가스 매설을 한 뒤 아스팔트를 새로 깔면서 경계석 위를 아스팔트로 덮게 되었다. 원래는 경계 표시를 하려고 경계석을 깔았으나 오히려 내 땅을 줄이고 길만 넓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그대로 두면 관행적 도로로 굳을 판이어서, 나는 경계석 위에 덮인 아스팔트를 삽과 곡괭이로 걷어내고 사진으로 찍어서 증거 자료로 남겼다.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겠지만, 야심가나 천성 자체가 이상한 사람들이 내가 멀쩡한 길을 줄였다고 시비를 걸 것이어서 미리 자료를 남긴 것이다.









내가 한참 땅을 파고 있으니 옆옆집 아저씨가 “요즈음에는 공사장에서도 이렇게 삽질을 하지는 않는다”면서 일 없는 날에 포크레인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도와주신다니 고마운 일인데, 경계석을 어디에 묻을지 정한 다음 아저씨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일단 땅 속에 몇 개나 묻혔는지부터 파악한 다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온전한 것이 스물두 개였고, 반 토막 난 것이 일곱 개였다. 경계석 열 몇 개는 내 힘으로 뽑았고, 나머지는 포크레인으로 캐냈다. 옆옆집 아저씨는 내가 정한 위치에 땅을 파고 그 근처로 경계석을 옮겼다. 나는 곧바로 경계석을 묻지 않고 구덩이 근처에 경계석을 두도록 했는데, 이는 경계석을 사도에 바짝 붙여서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기계가 좋아도 결국 정교한 작업을 하려면 손발을 써야 하기 마련이다.

나는 포크레인이 판 구덩이 옆을 삽으로 더 파서 기존 시멘트 도로의 위치를 파악했다. 시멘트 도로 위로 아스팔트가 깔린 것이니, 내가 시멘트만 깨부수지 않고 아스팔트만 걷어낸다면 어느 누구도 내가 멀쩡한 길을 줄였다고 비난할 수 없다. 멀쩡한 길을 좁힌 것이 아니라 원상복구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순 아스팔트 덩어리를 이용하여 경계석을 묻기 위한 기초를 만들었다. 그렇게 기초를 만들어야 경계석이 땅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경계석의 길이가 1미터이라서 땅을 50센티 이상 파고 기초를 20센티 이상 만들었다. 그런 다음 경계석을 구덩이에 밀어넣고 위치를 잡았다. 그냥 밀어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경계석하고 씨름을 해야 원하는 위치로 간다. 수평계로 수평도 잡았다.

땅을 파니 잡석이 많이 나왔다. 잡석을 이용하여 개비온을 채웠다. 개비온 안쪽에는 몇 달 전에 부순 콘크리트 덩어리를 넣고 개비온 바깥쪽에는 잡석을 넣었다. 외관상의 이유로 그렇게 한 것이다. 건축공학 논문에는 개비온을 채울 때 사암이나 이암 같은 퇴적암을 피해야 한다고 나오지만, 이는 고속도로 절개면 등 개비온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릴 때 해당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나는 개비온을 채울 때 땅에서 나온 퇴적암을 이용했다. 그러한 돌들이 풍화암 상태도 아니었고, 해당 암석의 수명이 내 수명보다는 길 것이어서 그렇게 했다.

개비온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기초를 조성하는 것이다. 철근 콘크리트 등 별도의 기초공사가 없어도 개비온을 설치할 수는 있지만, 50센티 이상 구덩이를 파고 아스팔트 덩어리와 자갈과 모래를 부어 기초를 마련했다. 개비온에 돌을 채워넣기 전에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돌을 채워넣는 중간 중간에 철사로 망을 붙잡아야 한다. 철사로 망을 붙잡아야 돌의 무게 때문에 개비온의 배가 부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개비온이 뒤틀려서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닫을 때도 돌이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딱 맞게 맞추어야 한다.






경계석 스물아홉 개를 모두 설치한 다음, 경계석과 그 다음 경계석의 거리가 먼 곳에는 중간에 큰 돌을 박고, 입구에는 개비온을 설치했다. 5톤 트럭까지는 운행에 지장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소방차도 중형 소방차(5톤)까지는 진입하는 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5톤 트럭부터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며, 혹시라도 진입한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경계석을 설치한 후 의도치 않게 동네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내가 할머니의 산소를 지키려고 그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덤프 트럭이 하도 지나가서 할머니 산소에 뛰어들 판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정말로 덤프 트럭이 할머니 산소로 뛰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석을 설치하면서 할머니 산소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옆집의 야욕을 막고 나의 재산을 지키고 삶의 질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땅을 파고 돌덩이와 씨름하여 그 고생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인들 눈에는 이것이 마치 할머니 산소를 지키기 위한 사투로 보였던 모양이다. 오해이기는 한데 좋은 오해라서 굳이 해명하지는 않고 “할머니는 좋은 분이셨다”고 대답했다. 사실, 좋은 분이었던 것은 맞다.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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