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스튜어트의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를 훑어보려다가 1장만 겨우 읽고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왜 소설을 못 읽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내가 소설을 못 읽는 것은, 어려서 과제 때문에 강제로 읽은 한국 근현대 소설이 죄다 우중충하고 별 볼 일 없는 이야기여서도 아니고, 엄마 타령이나 하며 찡찡거려서도 아니고, 별 것도 아닌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독백으로 우라지게 똥폼이나 잡아서도 아니고, 등장인물이 러시아 사람들이라서 이름을 못 외워서도 아니었다. 바로, 책을 읽는 방식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책은 목차를 보고 재미있을 만한 부분을 찾아서 볼 수도 있고 무작위로 책장을 짚어가며 조금씩 끊어서 읽을 수도 있다.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대강은 아는 분야라면 무작위로 펴서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때문에 재미있는 부분만 골라서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이게 되지 않는다. 뒤에 뭐가 나올지도 모르면서 앞에서부터 읽어야 하고, 한참을 읽어도 재미있는 내용이 안 나오고, 어떨 때는 다 읽을 때까지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도 안 나온다. 세상에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은데 무슨 감동을 받으려고 끊어 읽을 수도 없는 두꺼운 책을 다 읽어야 한단 말인가?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에 기대한 것은 딱 하나였다. 그래서 둘이 왜 만났느냐는 것이다. 목차를 봐도 책의 어느 부분을 읽어야 둘이 만난 이유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읽는데, 1장을 다 읽도록 쓸모 있는 내용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스피노자가 곱슬머리였다느니, 스피노자의 원래 이름은 무엇인데 그걸 어려서는 무엇이라고 불리었다느니, 스피노자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 도움도 안 될 뿐 아니라 하나도 흥미롭지 않은 자질구레한 내용만 나왔다. 스피노자가 곱슬머리였든 대머리였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도대체 어디까지 읽어야 쓸모 있는 내용이 나온단 말인가? 왜 어디부터 쓸모 있는 내용이 나온다고 책에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 때 잊고 있던 기억이 또 스믈스믈 올라왔다.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을 읽었을 때 느꼈던 불쾌감도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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