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4

학부생이 학술대회에서 겪은 황당한 일



어떤 학부생과 대학원 진학과 관련하여 온라인으로 상담했다. 그 학부생은 자신이 학회에서 겪은 일을 말하며 철학 쪽은 어떤지 물었다. 그 학부생은 최근에 어떤 학술대회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참석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학부생이 겪었던 황당한 일을 정리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학술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어느 교수가 학술대회가 시작되고도 한참이나 늦게 와서는 “최근에 외국에 갔다가 어제 늦게 도착해서 늦었다”고 하더니(어제 늦게 도착했는데 왜 오늘 늦을까?), 의자에 앉아 있던 그 학부생보고 “너 ◯◯◯ 제자지?”라고 반말로 묻고는 일어나라고 하고 자리를 빼앗아 앉았다고 한다. 행사장 입구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이상한 사람인데, 그 교수는 학부생보고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했고, 이에 학부생이 샌드위치를 가져다주자 한참 먹더니 학술대회장에 떡이 있는 것을 알고 나서 “왜 떡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떡을 가져다주었더니 “그냥 가져다주면 어떻게 먹느냐? 떡을 까줘야 먹을 것 아니냐?”고 난리를 쳐서 결국 학부생은 떡을 감싸고 있는 비닐을 벗겨주었다고 한다. 그 학부생의 지도교수도 떡을 까달라는 교수를 슬슬 피한다나 어쩐다나.

나는 떡을 까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뭔지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았다. “손톱을 너무 바짝 깎아서 그런 건가요?” 학부생은 그건 아니라고 답했다. 그 교수는 손톱이 긴 중년 여성이라고 한다. 그러면 더 이해가 안 가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떡을 까달라는 것이 혹시 성적인 메시지였던 것은 아닐까요?” 아마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 학부생은 대학원에서 지도교수 잘못 만나서 대학원 생활이 망하는,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를 건너건너로 들었을 것인데, 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난 교수에게 황당한 일을 당하니,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가 실화이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철학과 선생님들은 대체로 신사적이다. 내 말은 들은 학부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중간에 대학원을 그만 두지 않은 데는 선생님들이 신사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만일 선생님들 중에 비-신사적인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걸 트집 잡아 자퇴하면서, 내가 멍청해서 공부를 못 따라간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학계가 썩었느니 교수가 썩었느니 하며 본격적으로 양아치의 길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학교든 학과든 교수든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내가 자퇴했다면 자퇴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내가 멍청해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대학원을 계속 다니게 된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 뱀발

석사 2학기 때인가, 자퇴서 양식을 찾아본 적이 있다. 정말로 자퇴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자퇴서가 어떻게 생겨먹었나 그냥 본 것인데, 거기에는 자퇴 사유를 쓰는 공간 밑에 “위와 같은 사유로 자퇴를 하고자 하오니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되어 있었다. 문구가 너무 굴욕적이라서 자퇴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되어 있나 보다 했다.

(20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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