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9

전화기 표시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철학박사와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철학박사는 요즈음 학생들이 단어를 잘 모른다며 걱정했다. 학생들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도 모른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속담 중 상당수는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 읽은 속담풀이집을 통해 익힌 것 같은데, 요즈음 초등학생들은 그런 것을 읽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그런데 대화하다 보니 철학박사도 부뚜막과 관련된 속담은 알지만 부뚜막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사실, 나도 부뚜막을 보지는 못했는데 그거 부엌 비슷한 거 아니야?” 약간 다르다. 부뚜막은 솥을 걸 수 있도록 아궁이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턱을 말한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렸을 때 집에 부뚜막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어휘력 부족은, 책을 통해서 충분히 익힐 수 있었으나 익히지 못한 것과 경험 자체를 못 해서 익힐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개념어 같은 것 자체가 부족하면 의사소통이나 정보 전달에 문제가 생기므로 이 부분은 우려할 만하다. 그러나 부뚜막처럼 경험하지 못해서 모르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핵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현재 부뚜막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미래에도 부뚜막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몰라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고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가끔 경험하지 못했을 만한 것(가령, 천공카드)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신기한 학생들을 보기도 하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부뚜막을 안다는 것은 외고 학생이 천공카드 제작법이나 사용법을 아는 것만큼 신기한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0대나 20대가 전화기 표시(☎)를 보고 그게 왜 전화기를 나타내느냐고 묻는 것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은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전화기를 본 적도 없다. 시대가 변한 것뿐이고 세대가 다른 것뿐이며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왠지 가슴 한구석에 찜찜한 느낌이 남는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정서적인 측면을 공유하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가령, 내가 방에서 015B의 <텅빈 거리에서>를 혼자 듣고 있다고 하자. 미래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나의 아들이나 딸은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느냐고 나에게 묻을지도 모른다. 만일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눈물을 흘리며 말해도/아무도 대답하지 않고/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를 듣는다면, 나의 아들이나 딸은 아마도 멀뚱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런데 동전을 왜 쥐고 있죠?” 나는 그 질문에 대하여, 마치 박종현 역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주석처럼, 그 동전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 링크: 015B - 텅빈 거리에서

( www.youtube.com/watch?v=YG8lUuorwCQ )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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