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철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곽도원(곽철우 역)이 정우성(엄철우 역)을 데리고 의정부를 지나다가 의정부까지 북한 땅굴이 연결된 것으로 오인하고 정우성에게 이렇게 묻는다.
- 곽철우: “혹시 북한에서 두더지도 먹어?”
- 엄철우: “기딴 거 안 먹소! 이밥에 고기국 먹소!”
- 곽철우: “두더지도 안 먹는데 왜 이렇게 땅굴을 잘 파오? 통일되면 지하철은 당신들이 다 파오. 흐흐흐흐”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엄철우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에서는 두더지를 먹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지도 않은 우리 동네에서도 두더지를 먹는데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 왜 두더지를 먹지 않겠는가?
두더지는 살이 거의 없고 몸이 거의 뼈로 되어 있어서 살코기를 먹지 않고 국물을 내어서 먹는다. 탕재기에 두더지와 두더지의 냄새를 제거할 한약재를 같이 넣고 삶은 다음, 베로 국물을 짜내서 국물만 먹는다. 한약재를 넣어도 비린내 같은 것이 나서 고추가루를 넣는다고 한다. 나는 아직 안 먹어봐서 무슨 맛인지는 정확히 모르는데, 하여간 그렇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두더지 국물을 드시던 기억이 난다. 봄에 밭을 갈다가 두더지가 잡히기도 했고, 정말 재수 없게도 두더지가 실수로 땅 위로 나와서 잡히기도 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두더지를 많이 먹어서 오래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94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정말로 별다른 큰 병을 앓지 않으셨다. 두더지를 잡는 대로 드시는 아버지도 건강한 편이다. 동생은 예전에 공부할 때 몸이 약해지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께서 동생이 몸이 약해진 것 같다고 해서 강제로 먹인 일이 있다. 나와 어머니는 징그러워서 한 번도 두더지를 먹지 않았다.
화천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할머니와 아버지는 그 이전보다 두더지를 더 자주 먹게 되었다. 화천이가 두더지를 잡아왔기 때문이다. 전래동화 중에 호랑이가 은혜를 갚으러 산짐승을 잡아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창작자가 호랑이의 생태를 고려해서 이야기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고양이가 먹이감을 잡아오는 것에서 착안했을 것이다. 화천이가 두더지를 현관문 앞에 물어놓으면 그 두더지는 곧장 냉장고 냉동실로 들어간다. 어쩌다 두더지를 방치해도 화천이는 두더지를 먹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살이 별로 없고 거의 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제 화천이가 두더지를 잡아왔다. 현관문 앞에까지 가져오기는 했으나 먹지는 않고 툭툭 치기만 했다. 나는 두더지를 비닐봉투에 담아서 냉동실에 넣었다.
* 뱀발
생각해보니, 우리 동네에서 두더지를 먹는다고 해서 북한에서도 두더지를 꼭 먹는다는 보장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두더지의 효능이 나오니까 우리 동네 말고도 두더지를 먹기는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서도 두더지를 일반적으로 먹는다는 것이 따라나오지는 않는다.
내가 시골에서 있을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에는, 다른 시골에서는 하지 않고 우리 동네에서만 하는 일도 있다. 예전에 어느 모임에서 우리 동네 아저씨들이 돼지 육회를 먹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놀랐던 적이 있다. 돼지 육회를 먹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이다. 특히 정년퇴임을 앞둔 어떤 교수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자기도 고향이 시골이고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도 시골 출신들이 많은데도 돼지 육회를 먹는다는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시골이라고 해서 돼지 육회를 먹는 것이 아니고 우리 동네의 풍습이 이상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예전에 동네 잔치 한다고 양돈장에서 돼지를 잡아 오면,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돼지 육회를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 내가 고기를 좋아하고 육회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돼지 육회는 먹지 않았는데, 아저씨들은 나에게 돼지 육회를 권하며 잡은 지 여러 날 돼지는 육회로 먹으면 안 되지만 그 날 잡은 돼지는 육회로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한 번 돼지 육회를 먹으면 소 육회는 맛이 없어서 못 먹는다고 말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뇌에 구멍이 뚫릴까봐 안 먹기는 했는데, 하여간 도대체 그런 풍습은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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